단체 원정출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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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원정출산이라…
  • 미주한국일보
  • 승인 200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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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골프 치러 왔다."

한국에서 여유 있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 골프 치러 미국에 왔다고 비난받던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한국 국민의 소득이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 아이 낳으러 왔다."

이건 좀 이야기가 다르다. 빈부나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에 관한 문제다. 아이 낳으러 미국까지? 한국 여성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연어체질로 변했나. 우선 망신스럽다는 생각부터 든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여행하다가 애 낳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랴. 오히려 축하 할 만한 일이다. 임산부가 비행기 타고 가다 애 낳으면 승객들이 손뼉 치고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는가. 비행기에서 태어난 아기는 평생 그 비행기는 공짜다. 마찬가지로 산모가 미국여행 중 낳은 아기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는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 낳으러 일부러 미국에 왔다? 그것도 단체로? 웃음이 나오다가도 슬픈 생각이 든다. 한국인은 왜 그렇게 지름길을 좋아할까. 왜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를까. 왜 옆 사람은 고려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 들까. 마음이 착잡해진다.

악명 높은 빌케나우 나치수용소에서는 한 사람이 탈출하면 해당 막사 수용인 전원을 불러내어 그 중에서 속죄양을 골랐다. 각자 번호를 붙인 다음 10번, 20번, 30번 등을 처형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치수용소에서는 탈출하고 싶어도 타인의 피해를 생각해 참는 경우가 많았다.

원정출산의 문제점은 그 목적이 너무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데 있다. 왜 주거지를 떠나 이역만리에서 출산을 하려 드는가. 시민권 때문이다. 왜 자식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려 하는가. 교육 또는 병역에서 특혜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국 정부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 여성들이 단체로 몰려와 아기를 낳은 다음 자식들의 미국시민 여권만 움켜쥐고 돌아간다면 보고만 있을까. 한국 여성들의 미국입국 비자가 점점 까다로워질 것이다. 미대사관 영사들은 비자 받으러 온 여성들이 임신 만삭인가 아닌가를 유심히 살펴볼 것이고 심하면 "미국 여행중 절대 출산하지 않을 것을 약속함"이라는 서약서를 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코리안 이미지가 상처받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국의 모든 시스템은 상대방을 믿는 것이 기본정신이다. 개인 체크 유통, 크레딧 카드, 월부제도 그리고 세금보고 등 시스템 자체가 개인의 정직성과 신의를 전제로 삼고 있다. 과거에는 소셜시큐리티도 신청만 하면 아무나 다 주었고 코리안들은 왜 웰페어 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느냐면서 제발 타 가라고 소셜워커들이 사정사정했다.

지금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한인사회가 제일 세금감사 많이 받는 커뮤니티 중 하나에 속하고, 학교에서 학생의 거주지를 재확인하는가 하면, 집 사려고 서류를 제출하면 가짜 여부를 따지며 의심하고, 너도나도 웰페어를 신청하는 바람에 까다롭기 짝이 없어 대행업자까지 생겨난 판국이다. 이 모두가 새로 이민 온 마이너리티들이 미국 시스템을 악용해 물을 흐려놓은 탓이다.

미국은 다민족 사회다. 다민족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다. 이미지가 흐려지면 장사에도 지장이 있다. 특정 민족이 경영하는 가게를 피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체 원정출산은 부끄러운 코미디다. 자녀들에게 정도로 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름길 처세를 부모가 시범 보이는 셈이다. 요즘 서울에서 불어오는 바람 중에 망신스런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체 원정출산은 압권이다.

chullee@koreatimes.com

   이철 주필 칼럼





입력시간 : 200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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