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사병 병영 체험수기 '희성이, 종성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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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 사병 병영 체험수기 '희성이, 종성이 보아라'
  • 박병호
  • 승인 2008.07.0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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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호(브라질 거주 동포, 박희성.박종성 할아버지)
세월이 유수 같다더니 너희가 입대한 지 벌써 7개월이 다 되어 가는 구나. 처음에 너희 아버지가 아직 어린아이 같기 많나 너희들을 군에 보내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반대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굳이 군에 보내지 않아도 되는 손자들을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두 명씩이나 왜 군대로 밀어넣으려 하는 지 네 애비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얼굴을 붉힌 적도 있다.

또, 10년이란 기간동안 자유분방한 서양식 사고와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너희들이 군대생활을 잘 적응해 나갈 지도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네 아비의 결심은 단호했다. 외국에 살아보니 뿌리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면서 한국 사람임을 잊지 않고 살도록 하기 위해 군대는 꼭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너희 아버지를 더는 말릴 수 없었다. 너희들이 두말없이 네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희성아 종성아!

너희들이 입대를 결심하고 한국에 들어와 입영할 때까지 네 아비를 대신해 할아버지인 내가 징병검사 받고 훈련소에 입소하기까지 따라 다녀야했다. 그 덕분에 이 할아비는 잃어버린 젊은 시절을 되찾은 듯한 감회에 젖기도 하고 나의 군복무시절도 떠올려 보았다.

내가 군복무를 한 것이 1953년이니 5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는 6.25가 끝난 직후니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 군대생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내가 너희들의 자진입영을 반대한 이유도 그런 기억 때문일 게다.

그러나 너희와 함께 오랜 만에 찾은 병명은 참으로 많이 달라졌더구나. 나라가 잘살게 된 만큼 군도 발전했다는 것이겠지. 마음이 뿌듯했다.

너희들이 입영하던 날, 영주권을 가진 두 형제가 동시에 입영했다고 해서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찾아와 너희들을 인터뷰하는 바람에 너희 형제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너희들의 입대를 반대했던 나지만, 기사를 보니 얼마나 가슴 벅차고 너희들이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너희들이 대견했다.

그러나 기쁜 순간도 잠시 내심 너희들이 가까운 후방에 배치 받아 말년에 군인 간 손자들 면회하는 재미를 누리려했던 네 할미와 나의 소망을 저버리고 너희들은 최전방 부대를 지원해 가 버리고 말았다. 그곳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라 면회도 쉽지 않다니 서운했다. 너희들의 성장기를 보지 못한 서운함을 이제야 매꿔 보려나 했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너희 두 형제가 같은 부대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돼 마음이 놓인다. 연년생인데다 유난히 우애가 깊고 형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종성이한테는 잘된 일이다.

들으니 요즘은 영주권을 가진 병사들이 군 생활 때문에 영주권을 잃는 일이 없도록 국가에서 왕복항공권까지 대 준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희성아 종성아!

요즘은 TV를 볼 때마다 날씨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더운 나라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너희들이 최전방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솔직히 이 할아버지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얼마 전 너희들이 보내온 펹에 군에 와 몸무게가 3~5킬로그램이나 늘고, 그동안 못해본 눈구경 실컷 하면서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러지 않아도 날씨가 추워지면서 너희들 걱적이 많았는데 너희들 편지를 받고 조금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내 아들이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자랑스런 나의 손자 희성아 종성아!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단다. 이왕 너희들이 선택한 길이니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매 순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군 생활 잘 하기를 바란다.

비록 너희들의 입대를 반대한 나지만, 나라를 위해 젊은 시절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희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보람 있는 일인지 기억한다면 추운 겨울도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훗날 더운 브라질에서 돌아보는 조국의 겨울을 추억하며 밝게 웃을 날이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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