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을 코리안 드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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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을 코리안 드림으로
  • dongpo
  • 승인 2003.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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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던 한현순 박사(54)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후인 1969년 이민을 가는 언니와 형부를 따라 그도 미국으로 건너갔고 2003년 그는 미국 농무성 최초의 여성 수퍼그레이드 연구원이 되었다. 수퍼그레이드는 미국 과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다. 전체 농업 분야 연구원 가운데는 12명밖에 없고 급여는 상하원의원과 똑같다. 그는 전매특허만 6개를 가지고 있다. 한국과도 농업진흥청, 서울대, 충대, 창원대 등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난 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지금 농업관련 국제회의가 있으면 내가 미국대표자로 나간다. 그때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느낀다.”며 당당히 말한다.
이민의 경험을 ‘값진 것’이었다고 하는 한박사는 그 경험으로 성장했고 남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도와주고 싶은 이는 다름아닌 후학들이다. 한인 후학들을 더 가르치고 키워내는 것, 그의 코리안 드림이다. 이미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 많은 한국인 유학생을 거쳐가게 했고 장학금도 주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을 해외에 진출시켜 그 사회에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이제 모국의 후배들이 공부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는 후학들을 위해 이민 1세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직까지 한국기업, 실업가들이 한인커뮤니티와 지역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없는 것이 아쉽다고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2세, 3세의 교육이다. 특히 한국센터 같은 것을 만드는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한국을 알려 한인들이 커뮤니티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
그는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가 있다는 것도 얼마전에 알았다며 한인사회내에서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좋은 모임이 벌써 3회째라는 것을 몰랐던 것도 네트워크의 부족이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은 많지만 주류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간의 상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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