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여, 길림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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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여, 길림을 가다
  • 서지월
  • 승인 2008.04.2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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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대륙을 중국 행정구역상 동북삼성이라 일컫는다.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인데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 행정구역이라는 뜻. 압록강 윗쪽이 요녕성이라면 두만강 윗 쪽의 만주대륙 중간부분이 길림성이며, 흑룡강성은 만주대륙 맨 윗쪽에 해당되며,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흑룡강 아랫부분에 해당한다. 김림은 길림성의 성도 장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세 강 중 요녕성과 북한땅의 경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 압록강, 도문 훈춘을 거쳐 북태평양으로 흘러가는 강이 두만강이다. 만주대륙 한복판을 관통하며 길림을 거쳐 하얼빈, 동강시 삼강구에서 흑룡강 우수리강과 합류하는 강이 송화강이다. 우리민족 오천년 역사의 땅인 만주대륙을 변합없이 적시며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길림의 송화강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영하 20~30도에도 얼지 않으니 강물이 흘러가며 피워내는 안개로 인해 송화강변 뿐만 아니라 길림 시가지 전역의 가로수가 햇빛 쨍쨍한 대낮에도 눈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절경을 이루는데, 이를 무송(霧淞, 성에꽃)이라 부른다.

흑룡강성의 수도 하얼빈의 송화강은 영하 20~30도가 되는 겨울이면 1~2미터 두께로 얼어붙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얼빈에서는 해마다 겨울이면 '세계 빙등제'를 연다. 1미터가 넘는 두께의 송화강 얼음을 떼내어 거대한 얼음조각 형상들을 만들어 형광불을 밝혀 관광객들을 모은다. 송화강의 아름다운 무송(霧淞)과 하얼빈의 환상적인 빙등축제는 자연이 연출해낸 중국 4대 비경에 속한다.

길림 송화강변 동단산 아래 판자촌 같은 집들로 형성된 마을 한가운데로는 종일 굉음을 지르며 열차가 지나간다. 2천년 전 알에서 태어났다는 고주몽이 22세까지 어머니 유화부인과 살았던 동부여땅으로 이곳 동단산 자락이 고주몽의 고향마을인 셈이다.

활을 남달리 잘 쏘았다는 주몽이 어머니 슬하에서 아버지 없는 쓸쓸함을 달래며 의붓아버지인 금와왕 아래 외롭게 성장하면서 저 흘러가는 송화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나는 또 울분인지 비탄인지 가눌 길 없는 마음의 곡조를 억누를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 곳 동단산에서 바라보면 북쪽으로 그 유명한 용담산성이 보인다. 용담산산성은 중국 명칭이며 일명 고구려산성이라 부르기도 하며 고구려 당시 명칭으로는 부여성이라 한다.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시조왕이며 광개토대왕에게는 18대 할아버지가 되는 주몽왕(추모왕)이 어린시절을 보낸 18대 할아버지의 고향땅을 회복하러 이곳까지 북진해 쌓은 성이라 한다.

용담산성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면 성안은 물론 송화강과 길림시가 한 눈에 들어오고, 동단산도 바로 내려다 보인다.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제2의 도읍인 압록강변 집안땅에서 여기까지 북진정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곳에 세워진 비석에는 고구려 왕국 제19대왕 호태왕 때 산성안에 군사들의 식량과 말에게 먹이는 물 등을 보관하는 곳까지를 상세히 기술, 군사요새임을 소개하고 있다. 고구려왕국이라 표기하면서 공원전(公元前) 37년~공원(公元) 668년까지라는 고구려 건국과 멸망년도까지 적어놓았다.

그러니까 확실히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역사현장임이 분명하다.
중국은 용담산성 입구에 2004년 1월‘고구려 사람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高句麗人幷非朝鮮人)'라는 제목의 문화재 안내판에다 '고구려는 중국 고대 국가인 상나라(은나라)에서 기원한 한족이 세운 국가'라고 써 웃지 못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내판은 뒤에 철거됐다. 이와함께 고구려 역사 전반과 산성 건축의 특징 등을 적은 안내판들도 함께 철거된 사실은 아타까울 뿐이다.

근대사를 보면 북한의 김일성은 1925년 길림에서 학교를 다닌 소년이였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3.1운동이 일어나던 때 만주로 망명해 임강 팔도구 등 압록강 건너편에서 의원 노릇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다가 1926년 6월에 급사했다. 김일성은 정확하게 1927년 1월부터 1930년 5월까지 길림에서 머물렀는데 15세에서 18세까지가 된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것이다.

지금도 이곳 길림의 육문중학교 새 건물 안쪽의 옛 교사에는 김일성이 공부했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우리에게는 씻을 수 없는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민족의 가슴에 남겨준 장본인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역사는 앞으로만 앞으로만 치닫는 속성을 지닌 뱃머리 같아 지금은 잃어버린 땅이 되었지만 주몽이 22세가 되던 해 대소왕자의 위협을 이겨내지 못하여 어머니 유화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이곳 송화강을 거슬러 남하하여 비류수(지금의 혼강)에 이르러 도읍을 정한 곳이 환인땅 오녀산으로 고구려 제1 도읍을 정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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