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러시아 타운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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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러시아 타운 In Seoul
  • 남혜경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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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8일
"아이-, 그런 거 말고요, 오늘은 무엇을 했느냐? 어디엘 갔느냐? 뭐 이런 것을 물어보는게 좋은 것 같은데..."
" 아니야. 나한테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나는 이번 결혼에 내 인생을 걸었다. 그러니 당신도 그런 결심이 필요하다. 앞으로 정말 잘해 주겠다. 이런 걸 전하고 싶다니까..." "그런 마음은 이해하지만..."
딸 아이가 하나 있는 23살의 우즈베키스탄 여성(러시아 민족)과 결혼을 한 한국인 중년남성이(이도 이혼경력이 한번 있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한국 아가씨에게 핸드폰 수화기를 넘겨주고선 계속해서 "사랑한다. 잘 해 줄게" 만 반복하니 뭔가 둘 사이에 대화의 물꼬를 터줘야겠다 싶어 한국 아가씨가 제안을 하지만 남성은 마음이 급하기 만 한 모양이다.
2주일 전 동대문운동장 역 부근 어느 호프집에서  "우즈베키스탄 번개 모임"에서 이들은 만났다. 우즈베키스탄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계신 분이 주선한 모임으로 우즈베키스탄에 관심이 있는 이들 십여 명이 상면을 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 구상 중인 사람, 여행을 다녀온 사람, 가려고 하는 사람, 예전에 우즈베키스탄 대우자동차 공장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 등이 참석했다. 이 들중에 우즈베키스탄 여성과 결혼은 했지만 말도 안 통하는 신부와 어떻게 살림을 꾸려가야 할지 막막해 혹시나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없을까 하고 나온 이가 위에 소개한 중년남성이다. 그보다 앞서 우즈베키스탄 여성과 결혼한 선배(?) 부부가 잠시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이들의 모임장소는 러시아 음악이 흐르고 러시아 아가씨들이 써빙을 하는 동대문운동장 역 부근 호프집이었다.
일명 먹자 골목으로 불리우는 광희동1가를 중심으로 을지로 6가와 7가.  이 주변은 늘 러시아인과 중앙아시아인들로 가득하고 그들 교유의 음식인 샤슬릭(양고기나 돼지고기를 이용한 고치구이) 식당 만도 10개 이상이 있으며 2개월 전엔 러시아 빵 만 전문으로 구워 파는 베이커리 겸 카페도 생겼다. 그리고 사방엔 러시아 상호가 범람한다. 그들이 직접 차린 회사도 있고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한국 회사들도 이곳에 밀집해있다.
이곳에 오면 한국말을 몰라도 물건을 사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잘 수가 있다. 한국을 드나드는 봇다리 장사꾼들, 그들을 상대로 하는 의류회사나 가게에서 일을 하는 교포들. 중앙아시아나 몽고에서 온 노동자들. 그리고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러시아 아가씨들이 이 지역 주민이다. 관할파출소에서는 이 지역 외국인 거주자가 약 150명이라고 하지만 이는 일을 하는 이들의 숫자로 실제로는 이에 몇 배는 되는 인구가 이곳을 거점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본다..
서울에 이런 러시아 타운이 형성된 것은 1990년도 중반 이후 이다. 1994년 서울과 하바로브스크 간 항로가 열리면서 모스크바, 사할린, 타슈켄트, 알마티, 우란바틀간 직항로가 줄을 지어 개항을 하고 현재는 어느 지역이든 1주일에 적어도 2편 이상의 항공편이 뜨고 있다.
배편을 이용하던 시절에는 부산이 러시아 교역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장사꾼들이 점차 항공편을 이용하게 되면서 상권이 자연히 이리로 옮겨졋다.
장사꾼들이 항공편으로 바꾼데에는 시간을 벌려고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또 한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국내 세관 관계법규가 미처 정비가 안 되어 가구나 냉장고 같은 덩치가 큰 상품들까지도 거의 관세 없이  가지고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세관법이나 그 시행이 엄격해 지면서 봇다리 장사들이 들고 들어가는 품목이 가볍고 부피도 적고 부가가치도 높은(사할린의 경우 3배) 의류를 주로 취급하게 되었다.
동대문에는 봉제공장이 있다. 처음에는 국내 수요자용으로 만들어진 의류를 사 갔지만 모스크바나 멀리는 중앙아시아 몽고에서도 장사꾼들이 찾아 들면서 독자적인 하나의 상권을 형성해 그들의 체형이나 취향이 맞게 주문생산(소량의)을 하는 시스템이 구축 되어갔다.  그러면서 봉제공장이 많은 이 지역이 사람들이 몰려들게 된 것이다.
또 한국을 오가며 봇다리 장사를 하던 사람들 중에서 아예 한국에 회사를 차린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가 가장 좋았다는 99년경에는 교포들이 차린 의류회사가 1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최근에 싼 중국물건이 러시아 시장에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주문이 줄어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또 러시아 타운 형성에 크게 기여한 것이 숙소다. 동대문 밀레오레나 광희동 먹자골목 주변에는 장급 여관들이 많다. 봇다리 장사꾼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물건을 사서 날라야 하니 자연히 봉제공장이나 의류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을지로 6 가 부근에 숙소를 정하게 되고 장기 체류자들도 걸어서 일터에 나갈 수 있는 이 부근 여관에서 살림을 차린다. 방 하나를 한달에 4,50만원에 빌려 부부나 친구가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 선주민을 사할린 교포들이다. 그들은 비교적 한국어에 능통하여 일찍이 한국을 드나들며 장사를 시작했고 회사를 차린 사람들도 사할린 교포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할린 출신 사장은 사할린 교포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수교 후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인들 중에도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교역대상들도 범위가 확대되어 교포가 아닌 순수 러시아인들 또는 중앙아시아인들도 이곳을 쉽게 찾을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러시아 식당이 늘어나고 있는데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사할린 교포들은 한국음식을 즐긴다. 된장찌개 같은 순 한국음식을 늘 사할린에서도 먹어 왔기 때문에 한국식당을 선호한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교포들이나 러시아인들은 한국 식당에 가면 말도 안 통하고 입맛도 맞지 않는다. 이러한 인구가 늘면서 그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실제로 몇군데의 식당을 돌아보니 손님 대부분이 중앙아시아 교포나 러시아인들이었다. 식당의 운영자는 대부분 교포다. 임대를 하려면 한국인들의 명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에 연고가 있는 교포들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이다.
구소련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의류업계의 불황이 2년 전부터 심각하다고 하는데 러시아 타운의 운명은 어떠한가?
현재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우즈베키스탄 여성들만도  3천명은 될 것이라고 우즈베키스탄 관계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는 말한다. 그 외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는 중앙아시아인들, 불법으로 요식업에 종사하는 러시아 아가씨들 등, 구소련 지역 인구는 쉬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그 외 여행이나 업무차 이들 지역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한국 내에서도 러시아의 문화를 느끼고 싶어 이 곳을 찾고 있다.
주민의 얼굴은 바뀔 지언정 러시아 문화의 뿌리내림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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