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끼시마마루' 침몰사건 관련 새 자료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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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시마마루' 침몰사건 관련 새 자료 발견
  • 일본 김수종 입니다
  • 승인 200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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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일본 동경에서 발행되는 총련계 일간신문인 <조선신보>의 발표에 따르면, 해방직후인 1945년 8월 24일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따라 징용으로 끌려 왔던 조선인을 귀환시키려고 한 “우끼시마마루(浮島丸)”가 마이즈루(舞鶴) 앞바다에서 폭발, 침몰한 사건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최근 발견되였다고 한다.

이 자료는 일본정부가 1950년 2월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GHQ(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에 제출한 보고서의 일부라고 밝혔다.

당시 일본정부는 5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이 사건과 관련 말로는 인도적으로 대응한다고 하면서도 진상규명은커녕 피해자의 유골수집조차 회피했을뿐만 아니라 GHQ에 “조선측이 배상요구를 제기해 와도 이를 용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 자료에 의해 밝혀졌다고 한다.

조선인강제연행조사단이 발굴한 이 자료는 2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및 해외동포 연구인들에 의한 “우끼시마마루(浮島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평양토론회에서 발표되었다고 <조선신보>는 밝혔다.


우끼시마루(浮島丸)사건이란?  

일본의 동북부에 위치한 아오모리(靑林)현의 일본 해군기지에 끌려와 강제노역을 하던 조선인과 그들의 가족 3735명을 해방 직후인 45년 8월 22일 부산으로 귀환시키기 위해 군함에 싣고서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부산을 향하여 출발한 우끼시마루호는 갑자기 진로를 변경하여 교토(京都)의 마이즈루항(舞鶴港)에 입항하여 정박한 후 24일 저녁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출발 직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 사고와 함께 배가 침몰, 524명(일본 정부의 공식발표)이 수장되었다.

폭파사고와 배의 침몰은 당시 일본군에 의한 계획적인 범행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아직도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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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시마마루(浮島丸)사건은 한국의 목원대학 건축과의 김정동 선생에 의해 발굴되어 일본에서 발행되는 교민잡지 월간 "아리랑"에 소개된 것을 제외하곤,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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