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소동’과 유언비어
상태바
‘나훈아 소동’과 유언비어
  • 김주언
  • 승인 2008.01.30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주언(열린미디어연구소 이사)
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나훈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운하’, ‘너훈아’ 등 수많은 짝퉁가수들을 양산하고 짝퉁가수들마저 유명세를 타도록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의 노래를 즐겨 부르며 당시를 회고하기도 한다.

나훈아는 당대를 풍미했던 인기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 세간의 화제를 몰아왔으며 일부에서는 그가 어떻게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꿰찼을까 시기하기도 했다. 특히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을 끌었던 이들 커플은 이혼하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졌다”는 '명언'을 남겨 다시한번 화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제 나이 60줄을 넘겨 관심의 대상에서 사라진 듯하던 나훈아가 다시 2008년 무자년 벽두에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일본 야쿠자와 연루돼 신체 중요부위가 훼손됐다는 이른바 ‘나훈아 괴담’에 시달리던 그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그는 괴소문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쓸데없이 인식공격 하는 네티즌도 나쁘지만 그걸 부추기는 게 바로 언론”이라며 “아니면 말고, 맞으면 한탕 식으로 보도하는 언론은 펜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소리 높여 언론을 비판했다.

나씨는 또 “기사를 다룰 때는 신중했어야 한다. 더 알아보고 더 챙겨보고 진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함에도 진실은 어디로 가고 엉뚱한 이야기들만 하나부터 열까지 난무했다”며 기자들에게 ‘언론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나훈아는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양복 윗옷을 벗어던지고 테이블로 올라가 허리띠와 바지 단추를 풀고 지퍼를 반쯤 내렸다. 그는 오른손을 펴 보이며 “제가 바지를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러한 ‘나훈아 소동’은 국내 신문은 물론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흘러간 스타 쯤으로 취급받던 나훈아가 국제적인 스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된 것일까.

이번 소동은 언론자유가 만개한 상황에서도 유언비어가 널리 유포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자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만들어낸 웃지못할 참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1위의 정보 유통망을 갖춘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악의적인 유언비어는 ‘인격 살인’을 넘어 실제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얼마 전 자살한 탤런트 정다빈의 예는 이를 잘 말해준다. 더구나 우리의 언론은 언론자유를 남용해 유언비어를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한마디 반성도 하지 않는다. 이번 소동에서 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두 여배우 관련 보도에 대해 정정이나 사과 보도를 한 신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언비어는 언론통제로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던 독재시대에 번성했다. 당시에는 제도언론의 보도 보다도 유언비어로 만들어진 ‘유비통신’이 더욱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독재권력은 유언비어 유포를 금지시키고 유언비어를 유포할 경우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돼 언론자유가 만개한 우리 사회에서 악성 유언비어가 횡행한다.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일 수도 있고 일부 네티즌의 비정상적인 호기심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언론매체의 책임이 더 크다. 개인에 대한 악성 유언비어를 보도하는 것은 ‘인격 살인’이나 다름없다. 이제 우리 언론도 유언비어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