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왕 언니
상태바
거지왕 언니
  • 실비아 패튼
  • 승인 2007.12.20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실비아 패튼(한미여성회총연합회 회장, 본지 칼럼니스트)
어느 새 하얀 눈이 내리고 얼음비가 쏟아진다. 없는 사람들은 추워지는 날씨에 더 움추려들기 마련인데, 싸늘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뼈 속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까마귀소리, 외롭고 애처러운 까마귀소리를 매일 듣는다.

해마다 이맘 때면 난 구걸을 하러 다닌다.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몸도 움추려들지만 내 마음만은 평화롭고 즐겁다. 아직 고통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소리없는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위하여,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쓰일 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난 오늘도 먹고살만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귀찮게 한다.

“어휴 벌써 일년이 지나가나 보네 왕거지가 온거보니”

난 ”떼거지로 몰려오는 거 보단 낫잖아요” 하며 웃는다. 자주 가는 식당이지만 후원해 달라고 하며 갈 때는 좀 미안하기도 하다. 주인 아주머니는 수표를 한 장 써서 건네주며,“장사가 잘 되면 내년엔 더 해 줄께 항상 좋은 일 하는데 도와줘야지”그러시며 등을 쓰다듬어주신다.

10년 전의 일이다. 조그만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언니가 있었다. 내가 갈 때마다 두손에 똘똘말은 돈을 꼭 쥐어주시며 격려를 해 주시는 분이었다. 몇 년 동안이나….

어느날 그 언니는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언니는 은행 통장도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흑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무도, 정말 아무도 그에게 흑인혼혈딸이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편견과 차별속에 살았을 언니와 샬렛, 그 딸은 엄마의 야위어가는 모습에 마음 아파하고 통곡을 했다. 머리는 하나하나 빠지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면서 마지막으로 언니를 만나러 갔을 때 언니는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꼭잡고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었다"고 말했다. "후회 없이 간다"고 했다.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나도 한없이 울었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더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싶어하던 언니가 너무나 보고싶다. 낙옆이 떨어지고, 날이 추워지면 언니가 더욱 생각난다.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니면서 어떤 때는 뜨거운 눈물이 핑 돌 만큼 감격할 때도 있고, 어떤날은 목구멍이 아프면서 차가운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꽃집을 하는 나는 가끔 구걸 하러 가면서 꽃을 들고 간다.

“그 꽃 팔아서 기금으로 쓰지 그래요” 어느 한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가시돋힌 한 마디가 아직도 내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을 나누어 주고 있고, 따뜻한 격려의 말을 더 많이 해 준다. 그래서 난 왕거지가 되어 구걸하러 다니면서도 신이 난다.

행복하다는 건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일에 돈 몇푼 던져주고 생색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어려우면서도 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 돈 보다 귀한 건 마음이다.

난 많은 워싱톤 지인들께 그들의 보석같은 귀한 마음을 이맘 때면 받는다. 그 마음을 소중하게 만지고, 예쁜 색깔을 칠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