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장주의자들의 반시장적인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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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장주의자들의 반시장적인 주장
  • 이종태
  • 승인 2007.12.0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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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태(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 본보 칼럼니스트)
야권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현 시점의 한국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경제 담론은 ‘시장’과 ‘성장’이다.

이런 인기의 배경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반시장주의자였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어렵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매우 위험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반시장주의자이기는커녕 지나칠 정도로 시장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노동과 자본 이동의 유연성이 치솟았던 시기였다. 이런 정권을 좌파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은 ‘시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다음의 사례들을 보자.

첫 번째는, ‘좌파들이 반대하므로 시장이 좋다’는 시각이다. 한미 FTA에 찬성하는 이유가 “북한 김정일과 친북세력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분도 있다(유감스럽게도 한미 FTA를 실제로 추진하는 세력은, 이분이 ‘친북세력’으로 몰고 있는 노무현 정권이지만…).

‘자유무역에 따른 국부증대’나 ‘대미수출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적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한미 FTA에 찬성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묻지마 시장주의’는 사회적 증오에 기반한 것으로 매우 소박하다.

두 번째는, ‘묻지마 시장주의’ 보다 훨씬 세련된 논조를 펴지만, 본질은 ‘묻지마’와 동일한 경우이다. <문화일보>의 이신우 논설위원은 ‘금산분리 철폐’를 반대하는 국책연구기관 보고서들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몰아붙이며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국책연구기관들은) 가까운 예로 미국에는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는 예가 없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미국에도 우리의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처럼 정부가 소유하는 은행들이 있는가.”

완벽하게 틀렸다. 미국 수출입은행은 연차보고서에서 자사를 '수출 신용을 제공하는 공공기관(official export-credit agency)'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산분리 철폐’는 기실 매우 반시장주의적인 제도이다. 시장이란 제도는 원래 경제주체들 간의 ‘일정한 거리(arm's length)’를 요구한다. 예컨대 은행의 입장에서는 대출 희망 기업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을 어떤 가격(이자)으로 빌려주면 미래의 시장 상황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은행은 감시자, 기업은 피감시자로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의 은행 소유처럼 은행과 기업이 한 덩어리로 묶이는 상황은, 적어도 시장주의의 시각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금산분리가 철폐되면 은행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연고에 따라 대출하고 그 가격(이자)도 낮게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산분리 철폐는 반시장주의적인 주장이다.

이처럼 ‘팩트’(미국 수출입은행의 경우)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상태에서 ‘반시장주의’적 주장을 펼치는 시장주의(자)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공상적 시장주의(자)’이다.

마지막으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선거 공약사항을 통해 ‘포퓰리즘적 시장주의’가 판치고 있다. 노동 유연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를 약속하고, 정책금융기관을 민영화하겠다면서 동시에 중소기업에 파격적인 자금 지원을 약속한다.

시장은 ‘절대 진리’가 아니라, 국민경제의 필요에 따라 적절한 곳에서 적절한 형태로 작동시키면 되는 제도이다. 예컨대, 법률 관련 노동시장의 경우 노동력 공급이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해 그 가격도 서민들에겐 지나칠 정도로 높게 결정되고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강력한 이익단체에 구애되지 말고, 이런 부문에서 법률 인력 공급을 늘려서 시장을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 시장이 사회적 수요에 걸맞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거나 공급하기 힘든 영역에까지 시장을 갖다 대며 윽박지르는 것은, 그들이 사랑하는 시장에 너무나 미안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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