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면-관동대지진 80년, 관동대학살 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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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관동대지진 80년, 관동대학살 80년
  • 최연구
  • 승인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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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은 관동대지진 80주년되는 날이다. 하지만 이날은 우리에게는 '관동대학살'의 날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일본 간토(관동)지방에서는 진도 7.9의 격진이 일어나 14만명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런 혼란속에서 일본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렀다. 사회불안과 대지진 등 위기상황에서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일본당국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푼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의도적으로 유포했다. 간토지역에서는 삽시간에 3600여개의 자경단이 만들어져 갖가지 방법으로 조선인을 학살했다. 일본 지바현 야치오시에는 1923년 9월 1일 대지진 직후 조선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수용소가 있었다. 당시 야치오에서는 실제 불이난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이 방화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6명의 조선인들이 처형됐다. 결국 관동지역에 살던 조선인들 중 6천명이 학살되었다.

" '불이야'하는 소리가 들렸다.그때 조선인들이 권총을 들고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날밤은 아무도 잠을 자지 못했다. 끝내 조선인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조선인이 학살됐다는 얘기가 있어 친구와 함께 보러갔다. 길가에 두명이 죽어있었다. 일동은 만세를 불렀다." '대지진조난기'에 나오는 일본여자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쓴글이다. 대지진 조난기는 193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학생들이 남긴 기록이다. 조선인학살 목격담도 남아있다.

그로부터 어언 80년이 흘렀지만 관동대학살의 진상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일본변호사협회는 관동대지진 당시 군과 자경대가 수많은 한국인들을 학살한 사건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에게 사죄하고 진상을 규명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공식사죄는 커녕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관동지역 근처에는 관음사라는 절이있다. 관음사에서는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불쌍히 여겨 오랫동안 공양을 해왔다. 이를 알게된 한국측이 1985년에 단청을 입힌 '보화종루'와 쾌종을 만들었다. 종을 만들 때의 건립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오늘의 한국인은 어두운 역사를 미워하고 슬퍼할지언정 오늘의 일본, 일본인을 꾸짖고 싶지 않다."
관동대학살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는 일본당국의 태도를 우리는 꾸짖지 않아야 하는걸까.
최연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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