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韓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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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韓服)
  • dongpo
  • 승인 2003.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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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일/미국

얼마 전 잠시 귀국하게 되었을 때, 미국에 있는 친지 여인으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화로 한국에다 한복 한 벌을 맞추어 놓았는데 미국 올 때 좀 찾아다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가서, 급한 일부터 보고 나서, 예의 그 한복집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하필 내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인 15일이라야 다 된다고 했다. 이거 야단 났구나 싶어, 통사정 하다시피 간청을 해 보았다.
"출발하는 날 여기저기 급한 인사도 해야 하고, 준비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어느 결에 그 곳에 다녀와서 짐은 언제 싸고……. 공항에도 좀 미리 나가야지요. 14일 밤에라도 좀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선생님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거쳐야 할 불가피한 공정이 있어서요. 오후 6시 반 비행기면 아침 일찍 찾아 가시면 되겠네요."
"아니, 조금만 서두르시면, 하루쯤, 아니 한 10시간쯤 앞당길 수 있잖아요?"
"허, 허, 그렇게 해 드릴 수 있다면 서로 좋겠지만, 저의 집에서는……."
"알았습니다."
울화통이 치밀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버렸다. 나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 금방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급한 사람에게는 좀 앞당겨서 해 줄 수도 있는 일이지, 원……. 흥! 공정이라고? 무슨 공산품(工産品)을 만드나? 얼마나 유명한 집인지 몰라도 이렇게도 고자세일 수 있는가? 더군다나 미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입을 옷이라면 찾지 말아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남의 부탁을 외면할 수도 없고…….
볼멘 얼굴을 하고서, 15일 아침 일찍 한복집을 찾아 나섰다. 오래 전에는 일본식 적산 가옥들이 즐비하던 X동 뒷골목, 여기저기 그 옛날의 저택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어느 새 크고 작은 빌딩들이 꽉 들어찬 가운데 딱 한집, 전형적인 서울식 ㅁ 자 형 한옥이 있었다. 대문 위에는 쪽빛 테두리를 한 흰색 바탕의 나무 간판에 역시 쪽빛으로 'XX 한복집'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런데 순 한글로 된 이 간판의 필체가 결코 범상치 않아 보였다. '누군가 글 솜씨 하나는 뛰어나구만…….'
열려 있는 대문을 들어서자, 아담한 정원 풍경에 나도 모르는 사이 매혹되고 말았다. 정면 안채 오른쪽 빈 공간으로 뒷뜰이 보였는데, 언뜻 대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마당 한가운데는 작지만 오밀조밀한 연못이 있고, 연못 중앙엔 손바닥 만한 동산이 있는데 그 곳에는 오래 된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리고 사방 뜰 계단에는 온통 각종 난 화분들로 가득했다. 사군자(四君子)! 지금이 가을이라면 국화도 있겠지! 누군지 모르지만 인품이 꽤 고매한가 보군!
난 향기에 취해 한참을 서 있었는데도, 넓은 대청마루에 가득한 일손들이 어느 누구 한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청 계단을 올라서며, 헛기침을 몇 번 하자, 그제서야 젊은 아낙이,
"옷 맞추시려고요?"
하고 묻는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렇게 물어 본 모양이다.
"아니요, 저, 미국서 XX씨 부탁으로 옷 찾으러 왔습니다."
"아, 네, 어서 올라오시죠."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으니, 그녀는 이내 끓는 주전자를 들고 와서 차를 따른다. 그윽한 녹차 향기!
"몹시 언짢았던가 보죠?"
마주 앉은 그녀는 도시 내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데, 딴에는 차근차근 말을 이어 갔다.
"미국 XX씨가 주문한 옷감은……라고 하는 모시……. 쪽물 들이기를 최소한 3번……, 풀 먹이고, 재우고, 다듬질하고, 마르고, 다시 빨고……, 이렇게 3번을 반복해야 제대로 품이 나오지요. 또…… 중요한 부분은 일일이 손으로 박음질……. 수놓는 것도…… 손으로……. 금박 입히는 것도…… 금박 종이를…… 인두로……. 이 모든 과정을 다 설명드릴 순 없지만, 아무튼 우리로서는 최대한 빨리 해 드리는 겁니다."
무슨 변명을 하려니 하고, 지레 짐작을 하고서 애써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모시 종류인지, 모시처럼 이었는지, 또는 모시와 달리였는지 분명치 않았다. 또한 무엇인가 3번 한다고 했는데,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도 알 길 없다. 다만, 우리 조상들이 개발, 발전시켜 온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때였다. 안방 쪽에서, 보자기에 단정히 싼 넓적한 상자를 고이 받혀 들고, 나이 지긋한 여인이 나왔다. 훤한 이마에 오똑한 콧날, 촉촉이 젖은 듯한 빛나는 눈망울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기품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엇인가에 취한 듯, 그녀를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위로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오래 전에 타계하신 어머님을 뵙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다소곳이 목례를 하고선, 나의 맞은편 자리에 조용히 앉으면서, 아마도 주문한 한복이 들어 있는 듯한 그 상자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수인사가 끝나고, 통상적인 간단한 대화 끝에, 그녀는 말을 이었다.
"한국 사람은 한복을 입어야 제격이지요. 우리 조상들께서 오랜 기간, 우리 몸에 그리고 우리 풍토와 문화에 맞게 개발하고 다듬어 온 옷이니까요."
이렇듯 그녀의 한복 예찬론 시동이 걸리려는 듯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비행기 시간에 쫓기고 있음을 상기하고,
"이 다음에 제가 한복을 맞추고자 할 때는 꼭 이리로 오고 싶습니다. 시간이 없어 이만 실례해야겠습니다. 시간 맞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서둘러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문을 나서면서 언뜻 뒤돌아보니 그녀는 마루 끝에 조용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자식을 배웅하며 아쉬워하듯이…….
시간 맞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그 집을 찾아갈 때는 한바탕 퍼부어 주고라도 싶었던 내 마음이, 그 집을 나설 때는 180도로 바뀌어 있었다. 더욱이, 그녀는 늦어서 미안하다든가 이런저런 이유로 불가피했다든가 한 마디 변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틈에, 왜, 나의 불평불만이 봄눈 녹듯 사라진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어머님으로부터 느꼈던 기품을 그녀로부터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 기품이란 것이, 내 핏속에 흐르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운 인품, 그 인품을 받쳐 주는 우아한 한복의 멋스러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그렇다! 내가 보았던 어머님의 상은, 결코 나 개인의 어머니가 아니라, 이 땅의 선비들을 길러 주던,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던 것이며. 한복에 깃들어 있는 기품, 그것은 이제는 거의 사라지려고 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선비정신,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입고 다니는 두루마기는 일종의 간편복이요, 원래, 우리 선비의 정장은 도포 차림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누군가가 전통적 도포 차림을 하고 거리에 나선다든가, 대학 강단에 선다면, 사람들은 포복 절도할지 모른다. 왜 그럴까? 한국인이 서양 복장, 즉 양복을 입은 모습은 자연스러워 보이고, 한국인이 한국 복장 즉 한복, 특히 선비의 정장인 도포를 입고 있는 모습이 왜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일제 침략으로 단절된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백여 년 전으로 무리하게 연결시키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정신적·물질적 면에서, 우리의 끊어진 맥을 다시 잇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단절된 맥을 이어 가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한복에 깃들어 있는, 선비정신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선비 사(士) 자 들어간 직업을 가진 자는 모두가 도둑이다.'라는 말이 없어져야 할 것이며, 감옥에서 바지 저고리를 입는 한복 모독 행위도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대학 졸업식에서 학사, 석사, 박사에게, 우리 전통의 도포 차림을 하게 함으로써, 선비정신을 각성시켜 주는 것이 어떨까? 또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한복을 입은, 당당하고 진정한 선비들의 모습이 뼈저리게 보고 싶어진다.

미국에 돌아와서 부탁 받았던 여인에게 한복을 전해 준 지 얼마인가 지나서였다. 그녀로부터 어떤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바쁜 일정 중에 틈을 내어 참석하게 되었다. 그 때, 그녀가 예의 그 한복을 입고 나온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 마디로 품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근본적으로 인품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 인품을 받쳐 주는 것이 몸에 지닌 부착물, 즉 옷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수인사가 끝나고 그녀가 입은 한복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전문 지식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모시 종류가 아닌가 싶었다. 모시라면 나 자신도 흰 바지적삼을 입은 적이 있는데, 내가 입던 모시옷은 뻣뻣해서, 여기저기 볼품 없이 불룩불룩 튀어 나오고 구겨지는 것이 예사였는데, 이 여인의 옷은 결코 그렇지 않고, 가지런한 것이 한껏 더 품위가 있어 보였다. 옷감 종류가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3번 했다던 그 과정 때문이었을까? 쪽빛 겉감에 흰색 안감을 받쳐 은은히 풍겨 나오는, 멋드러진 치마 색감, 연한 쪽빛을 띨 듯 말 듯한 고상한 흰 저고리, 치마 색상과 어울린 끝동과 섶, 거기에 수놓은, 결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워 보이는 자수……,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다. 이에 비하여, 다른 여자 분들의 옷을 보면, 저고리 뒷끝이 너무 처져 있거나 불룩 튀어 나오기도 하고, 간혹 너무 짧아서 동여맨 흰색 끈이 보이기도 한다. 갑사 저고리에 미싱 자수를 마구 수놓은 것도 있고, 치마에도 어울리지 않게 너무 많은 수를 놓은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여인의 옷은 군계일학처럼 단연 돋보였다.
나는 이 여인의 한복 입은 단아하고 고상한 모습을 보고서, 이 다음 우리 큰아이 혼사 때는, 기필코 그 집에서 한복을 맞추리라고 마음먹게 되었다.
수년 후, 드디어 그 기회가 왔다. 나는 부득불 우겨서 그 한복 집을 찾아 나섰다. 고결한 선비님들을 길러 내던, 우리 모두의 어머님 상을 보고자 마음 설레이면서.
그러나 오! 하느님 !
한복집이 있던 그 자리엔 높다란 낯선 빌딩이 들어서 있고 한복집은 온데 간데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아는 이가 없다. 가까운 세탁소에 가서 수소문해 보았다
"물루지유, 어디로 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근데 그래가지고 장사가 돼요? 시대에 맞게, 손님들 비위를 적당히 맞춰 가며, 돈벌이에 치중해야지! 그놈의 전통인가 뭔가가 밥 먹여 주나, 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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