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 기업들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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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 기업들의 슬픈 자화상”
  • 김수종
  • 승인 2003.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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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와 입맛 공략으로 성공한 진로소주와 辛라면 "

아직도 일본인들의 뇌리에는 삼성, 현대, LG등 한국 유수의 기업들이 낯선 이름의 그저 그런 브랜드 파워를 가진 회사로 각인되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공룡재벌로 일등이 어쩌니, 세계최고를 꿈꾸니 등을 말하고 있지만, 계열사 수만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뿐이지 연구개발, 기술력에서 이들 기업은 일본기업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한국에 수많은 대기업이 있지만 정작 일본에서 아주 잘 알려진 한국기업과 브랜드는 의외로 규모는 작지만 알차게 현지화된 기업들이다. IMF 이후 한국 본사가 골드만삭스이라는 다국적 기업에 의해 흡수 합병 될 정도로 고생을 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 소주시장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은 "진로"라는 소주를 일본현지에서 만들고 있는 (주)진로재팬. 그리고 한국의 맛을 그대로 가져와 일본인들의 입맛을 바꾸었다는 평까지 받고 있는, 맵고 똑쏘는 맛으로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라면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辛라면"의 (주)농심재팬이 그런 기업들이다.

한국에서 인지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기업들에 비한다면 한국을 알리는 최고의 상표라고 생각하기에 미약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제품들이다. 한국인들에게 소주는 비싸지 않는, 어디 가도 마실수 있는 흔하디 흔한 서민들의 술이고, 辛라면 역시 가정에서 손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값싼 인스턴트 라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다른 대기업에서 만든 자동차나 냉장고, 텔레비젼, 에어컨 같이 비싸고 덩치큰 제품 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알려진 상품. 한국의 입맛으로 일본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일본진출에 성공한 "진로소주"와 "辛라면"이다.

"현지교민시장을 발판으로 도약하라!"

그렇다면 이들 제품이 일본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한국을 대표하는 소주인 "진로"를 보자. 놀랍게도 진로는 처음부터 일본산 소주 가격 보다 조금은 비싼 가격에 판매를 시작했고, 진로를 위스키급으로 격상시켜 한국산 “위스키”로 홍보를 하였다. 위스키급의 높은 가격으로 값을 정하고 판매하면서, 비싼 소비자 가격에서 오는 높은 마진을 실제로 진로를 배달하고 공급을 맡은 중간 도매상들에게 최대한의 마진을 보장해 줌으로써 일본의 높다는 술시장 장벽을 돌파했다.

그와 동시에 재일 조선,한국인들이 경영하는 불고기집을 중심으로 판매를 시작하여 한국 야끼니쿠와 함께 먹고 마실때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산 최고급 위스키 "진로"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차츰 일본내 한국시장을 장악하여 그곳에서 얻은 좋은 평가를 발판으로 일본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辛라면"의 경우 세계최고의 라면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조금은 꺼려하는 매운 맛을 “싸고 맛있다.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주는 매운맛의 라면”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 일본 여성들의 입맛을 접수하고, 보통의 일본 인스턴트 라면 가격보다 조금 비싼 특별한 라면이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매니아 층을 형성하게 된다.

총괄하여 보자면 전부가 초기부터 고가로 제품가격을 설정하여 한국산도 비싸고 좋다는 이미지 마케팅을 시작하였으며, 중간마진을 모두 도매상에 넘겨주는 것으로 일본시장의 높은 벽을 넘었으며, 재일 코리안들의 입소문을 통하여 상품가치를 평가받게 되는 마케팅 방법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최고라고 인정받은 제품은 일본에서도 최고라는 자신감으로 승부를 한것이다.

"아직도 미끼상품 수준의 한국산 전자제품"

"진로소주"와 "신라면"의 승승장구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유수한 대기업들의 일본 현지지사의 마케팅은 어떠한가?

일본에는 “미끼상품”이라는 것이 있다. 손님을 끌기위해 점두에 진열하여 시중보다 싼 가격에 판매하는 물품을 칭하는 말인데, 백화점에서는 의류가, 수퍼에서는 라면이나 요구르트가,약국에서는 박카스가 주로 쓰인다. 보통 싼값에 대량구매가 가능한 품목은 구매가격보다도 싸게 “낚시용 미끼”처럼 판매를 하고, 전자제품 같은 조금 고가의 물품은 원가 혹은 약간 손해를 보는 듯한 가격으로 판매하여 전체적으로 자사의 상품 전반이 싸다는 이미지를 주어 손님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이 “미끼상품”이 담당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양판점이나 수퍼,백화점에서 미끼상품(目玉商品)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 많은데 그 상당수가 한국상품들이다.

얼마전 사무실로 배달된 신문 사이에 들어있는 수많은 전단지를 보니 양판점의 가전제품 대처분세일에 관한것이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삼성의 냉장고 232리터형 28,000엔 20대한정 판매라는 문구였다. 다른 일본산 동급 모델에 비해 15,000엔 정도 싼가격이다. 같은 회사의 비디오 플레이어 6,500엔. 다른 동급 모델에 비해 5,000엔 정도 싼 가격이다. 대우의 세탁기 4.6킬로형 14,000엔 20대 한정 판매라는 문구도 보였다. 다른 일본산 동급 모델에 비해 10,000엔 싼 가격이며, 같은 란의 엘지 세탁기 4.5킬로형 12,800엔이다. 물론 20대 한정 판매로써 다른 동급 모델에 비해 8,000엔 정도 싼 가격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너무 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렴한 미끼상품이 되어버린 한국 전자 제품의 실태를 보기위해 동경의 신주쿠에 있는 요도바시의 대형 양판점으로 갔다. 실제로 많은 한국 제품들이 아주 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店長을 맡고 있는 高山(다까야마)씨는 이런 이야기를 기자에게 들려 주었다.

"주로 한국과 동남아의 전자제품이 저희 가게의 점두를 장식한 미끼상품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수량 한정이 있기는 하지만 동급제품의 경우에는 한국상품의 경우 시중가격보다 10-40% 정도 싼 가격에 판매를 하고 있지요. 아무래도 한국제품은 아직은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관계로 싸게 판매되어 있으며 젊은 분들이나 노년층 고객들이 주로 구매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일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한국산 냉장고나 세탁기는 판매실적이 좋은 편입니다.”

“아쉽게도 내부부품 대부분이 일제인 한국산 액정TV같은 고가의 물품은 아직은 수요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액정TV의 경우 그냥 일본산을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반 TV의 경우에는 한국산은 소형이 주로 판매되고 있는 편입니다. 앞으로 전자제품이 일본시장에서 제대로 승부를 하려면 일본산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최고의 한국산 제품이 일본에 들어와서 공정하게 경쟁을 벌일 필요가 있습니다.”

"공격적인 현지화 마케팅과 연구개발확대 절실"

지난 4월 한국의 삼성전자가 소니를 주가와 매출액에서 앞서고 있고, 지금 엘지의 액정TV가 세계최고라는 기사가 간혹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시장에서는 한국의 전자제품은 미끼상품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그동안 일본주재 한국기업들은 모두가 미끼상품 위주의 판매시장 개척에 안주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최고의 물건을 가져와 최상의 경쟁을 하기 보다는 중하급품을 가지고 와서 시장에 안주하는 판매전술로 일본시장과 싸워 온 것이다.

사실 지난 수십년간 애국심으로 자국민들에게 상품구매를 강요하던 시대는 이제 옛날얘기에 불과하다. 지금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기술력있고 상품좋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며 A/S가 확실하다면, 어느나라 상품에 관계없이 구매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는 길은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력 축적과 발로 뛰는 마케팅 전략뿐이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저가물품으로 일본시장을 공격해오는 지금, 한국기업이 중저가 물품을 앉아서 팔던 시대는 분명 끝났다. 한국처럼 수출만이 살길인 나라에서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그것을 뒷바침해줄 연구개발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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