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인터뷰 > 러시아 동포3세 작가 아나톨리 김씨
상태바
< 연합인터뷰 > 러시아 동포3세 작가 아나톨리 김씨
  • dongpo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고려인들이 여러 방면에서 성취한 민족 자산은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이것이 한국인의 자산으로 귀속되지 않고 흩어진 채 남아 있다.
이를 끌어 모으는 작업이 민족 정체성을 찾는 길이다."

    재외동포재단(이사장 권병현)과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한민족 문학포럼'에 참
가한 러시아 동포3세 작가 아나톨리 김(64)씨는 2일 "러시아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을 어떻게 한민족의 개념으로 끌어내야 하나"라고 자문하고는 이같이  대답
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김씨는 지난 73년 단편 '수채화'와  '묘코의  들장미'를
문예지 '오로라'에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고, 지난 84년 장편소설 '다람쥐'를 발표
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김씨는 '바흐 음악을 들으며 버섯이 필 때', '켄타우로스의 마을',  '신의
플루트' 등 다수의 작품을 썼고, 97년 톨스토이재단이 창간한 러시아 최대 문학지 '
야스나야 폴랴나'의 초대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김씨는 "나도 러시아어로 말하고 글을 쓰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다.
다른 고려인들도 한국인이고 싶어한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한국인으로 죽고  싶어
한다. 어디를 가나 나는 한국인이다"라며 다시 "한민족은 왜 전 세계로 나가 흩어져
살았는가"라고 스스로 묻고는 "한국이 농업국가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농업국가에서 땅은 유산이며 생명이다. 제한된 땅과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가족,
자식에게 물려줄 땅은 부족하고, 장남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많은  차남
과 막내 그리고 딸들은 나름대로 살길을 모색했지만 끝내 자리를 못 잡은 그들은 해
외로 눈을 돌렸으며, 하나 둘씩 형님 곁을 떠났다."

    김씨는 "멀리 떨어져 사는 그들은 당연히 형을 생각하고, 형은 동생들을 생각하
며 살아왔고, 다른 민족에선 볼 수 없는 특유의 사고 방식인 '정'(情)을 갖고  나누
며 한민족은 살아왔다"고 설명한다.

    1906년 가족을 버리고 러시아로 이주한 조부의 3남매 중 막내인 부친  알렉셰예
비치 김씨의 삶도, 자신의 삶도 그런 독특한 관계 속에 설정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씨는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문학은 '형님을 그리워하
는 문학'이라고 규정짓고, 자신의 문학 뿌리도 이와 깊은 연(緣)을 맺고 있다고  강
조했다.

    김씨는 "고려인들은 공간확보를 하지 못한 채 익명상태로 살고  주변인으로부터
질투와 증오를 받으며 방랑하는 등 숱한 어려움 속에서 살면서  철저히  개인주의로
흘렀다"며 "그런 '은근과 끈기'는 나의 작가정신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내 작품은 '비극적 외로움', 나와 연관이 없는 땅에서 느끼는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들로 가득하다. 생각건대 한민족에겐 '낯선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
이 있다"며 "작품에 나타나는 외로움은 신순남 화백의 그림에 나타난 화려한 색채에
숨겨진 외로움보다 더 크고 비극적"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모든 것들을 소설로 담고 있는 김씨는  "어른이
성장하고 부자가 되는 것은 뭘 얻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가졌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릴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 글을 써오면서
축적해온 모든 힘을 바쳐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집필 중인 작품에 대해 어른들이 소리내어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한 장
편소설로, "책을 읽어주던 부모가 울면, 아이도 우는 그런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이 소설을 쓰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어떤 언어로 부모와 아이를 모두 이해
하고 믿을 수 있게 해야 하나'라는 문제다. 이는 본질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정체성의 고민이다."(사진있음)

    ghwang@yna.co.kr

(끝)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