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검은 꽃’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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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검은 꽃’의 향기
  • dongpo
  • 승인 200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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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민족의 자취들이 발견될 때마다 우리들은 문득 시간의 역류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동포들, 그들은 과연 어떠한 경로로 그곳에 심겨졌던 것일까. ‘검은 꽃’은 바로 작가 김영하의 멕시코 이민사에 대한 궁금증과 이에 대한 집요한 노력이 빛나는 책이다. 멕시코 이민의 뿌리, 우리 이민사 한 켠에 숨겨지고 가리워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를 역사의 진실 앞으로 안내한다.

‘검은 꽃’은 기울어가는 대한제국의 운명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에 돌입한 즈음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1905년 4월 영국 기선 일포드 호가 조선인 1033명을 싣고 낯선 땅 미지의 땅 멕시코를 향하여 제물포 항을 출발한다. 멕시코에 가면 좋은 일자리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승선한 조선인 승객들, 그 중에는 황족의 일가도 있고 도둑도 섞여있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환상이 가져다 준 것은 낯선 환경과 에네켄 농장에서의 가혹한 노동, 그리고 멕시코에 불어 닥친 혁명과 내전의 바람에 휩쓸려 벌어진 죽고 죽이는 싸움뿐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신대한’을 국호로 한 임시정부를 세우려는 노력들이 있었지만, 결국 모두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미지의 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꿈들을 이렇게 끝까지 허물어뜨리며 이야기를 맺으면서도 작가는 시종일관 덤덤하다. 이는 미지의 땅에 대한 순진한 환상으로 가슴 부푼 모든 이들에게 보내고자 하는 애정 어린 충고일 수도 있고, 제2의 ‘검은 꽃’ 이야기가 현재 우리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귀띔해 주려는 의도에서인지도 모른다. 기울어 가던 대한제국의 운명과 오늘의 시대상황, 그리고 각 시대상황 속에서 대처하는 국민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교집합을 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검은 꽃’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민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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