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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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현이'
  • 홍석화
  • 승인 2007.06.0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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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석화(토종연구가, 본지 칼럼니스트)
약 한달여전 우연한 기회에 한국인 입양아 ‘현이(女·33세)’를 알게 된건 뜻밖에 발생한 ‘인생의 예기치 못한 일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현이는 태어난지 겨우 4개월때 길 가에 버려졌고 파출소→홀트아동복지회를 거쳐 유럽의 ‘덴마크’로 입양되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수의사인 양아버지와 현이의 입양 뒤에 새로 태어난 여동생, 양어머니 등 ‘새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살아가고 있지요. 한국에는 17살 때 잠깐 다녀갔으나, 친어머니를 찾을 수 있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약 한달 간의 이번 방문에도 ‘모친 찾는 일’은 그저 아스라이 가슴 속에 저며드는- ‘제껴놓아야 할 소망사항’으로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모던댄서입니다. 그래서 그 짧은 체류기간 중에도 한국의 춤-탈춤과 살풀이-를 힘들여서 열심히 배우더군요. 4살 연하의 약혼자와 함께 왔는데, 그는 아시아, 중동, 유럽의 7~8개국을 다녀봤지만 “한국인처럼 다정다감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은 처음 봤다”면서 기회를 만들어 다시 한국에 돌아와, 자신들의 작품도 공연하며 (그는 안무가임) 여행도 하고, 한국·한국인에 “흠뻑 젖어 살아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덴마크로 돌아가기 전에 가장 하고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출발일이 1주일 밖에 안 남았을 때) “무당(샤먼)을 만나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잘 알고지내는 무당에게 데리고 가서-, ‘사주’도 보고 두 사람의 인생에 대해 무당의 ‘신내린 말씀’을 들려주기도 했지요. 이들은 덴마크로 돌아갈 때 눈시울이 붉어지게 울먹이며 “꼭 다시 돌아오마-, 너무 감사하다-, 당신에게, 한국사람 모두에게-” 하면서 공항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저도 웬지모르게 가슴이 짜-안하게 아려오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을 우리의 ‘입양아들’ 전체로 상념의 나래가 흘러가더군요.

지금은 ‘먹고 살기’가 훨씬 나아져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또 20~30년 전에는 거의 없다시피하던 ‘국내입양’이 서서히 증가 추세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약 2만여건) 지금까지 해외 입양된 한국인 아이들이 대략 7만 7천여건이나(홀트아동복지회의 추산) 된다고 하니, 이들이 겪었을 저간의 보편적 ‘정체성의 혼란’이 얼마나 컸을까... 새삼스레 가슴이 저며옵니다.

헌데 러시아나 중국, 일본, 미국 등 이민 2.3세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는 나라에서 겪는 ‘조상과 뿌리’에 대한 ‘호기심’과 ‘정체성의 탐색’에 비해서-, 유럽 쪽으로 보내졌던 입양아들이 겪었을 정신적·사회적 갈등과 아픔의 상처는, 훨씬 더 심각하고 꽤나 오랫동안- 아니 그 사람의 전 인생을 관통하기 마련이라 여겨집니다.

하여튼 여기서 우리가 가슴 저려하며 아프게 느끼는 심정의 바탕엔 ‘디아스포라(Diaspora)'란 단어․개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흩어 뿌려진 사람(특히 유대인을 지칭)”이라는 뜻인데, 요즈음엔 망명(추방), 유랑, 실향, 이민, 이산… 이런 넓은 의미의 ’찟김의 삶‘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지요.

이는 물론 나라 사이의 국경을 넘나듦에서 오는 찟김이 그 주요 초점이지만, 사실은 한나라 안에서도 ‘멀리 찢겨져 살아가야만 하는’ 이런저런 경우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겠습니다. 특히나 현재 한국사회 현실에서는, 오늘의 주제인 입양아뿐만 아니라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동남아를 헤매는 탈북자,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동남아, 중국 등지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초미의 사회적 과제라 하겠고요-.

아무튼 이 디아스포라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인간 삶의 모습임이 분명합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자기나라 자기민족에게서 억지로 떨어져 ‘찢겨져 살도록’ 강제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것은 아픔이고, 상처고, 절박한 생물체로서의 신체의 보전이고, 동시에 그 사회, 그 나라, 나아가선 이 세상 전체에 대한 온 몸뚱아리의 절규, 분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 디아스포라에는 역사적으로 항상 그 시대의 정치, 경제적 ‘강요’가 깔려있기 마련입니다. 한 가지 아주 손쉬운 예를 들자면, 스탈린에 의한 ‘고려인’들의 ‘연해주-중앙아시아 강제이주’ 같은 것들 이겠지요.

입양아-. 구미대륙에 뿌려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약 8만 여명-. 이 역시 우리시대, 우리 겨레의 자그마한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입니다. 우리 재외동포님들이 살고 계시는 그 지역, 그 근처에는 혹시 이런 디아스포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지요?

입양아, 망명자, 이주노동자, 이산가족… 찟김의 디아스포라들… 버림받아 흩뿌려진 인간 생명체들… 이들이 ‘굶주림’과 ‘공포’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도움·보살핌이 돼 줄 수만 있다면-, 이들이 “과연 나의 조상은 누구이고,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 나라란, 민족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런 고뇌로 잠 못 이뤄 뒤척일 때, 자그마한 한 줄기 ‘위로의 엘레지’를 불러줄 수만 있다면-, 아니 그들의 ‘찟김’과 ‘뿌리뽑힘’을 그저 담담히 들어주기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재외동포님들의 ‘재외 생활'에 있어서- 우리 조상님들이 대대로 지녀오셨던 ‘보따리 정신’으로 흘러가며 아우라지는- 한 가지 ‘동병상련’의 무지개빛 활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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