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 어떤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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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 어떤 외교관
  • 박화진
  • 승인 2007.05.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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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외무공무원, 즉 외교관 직업에 대해서는 유창한 외국어 구사능력, 세련된 매너, 해외생활 중 국제법상 특권 등 공무원 중에서도 선망의 대상이다.

나 역시 경찰주재관으로 '영사'는 직함의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근무하는 영광스런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곳 자카르타에 온지 햇수로 3년째니 어렴풋이 외교관이라는 직업의 세계에 대해서 경험하게 되었다. 짧지 않은 경찰생활을 하면서 여러 정부부처 공무원들과 어울려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대사관이라는 곳도 장소가 해외라는 점을 제외하곤 외교부 직업외교관과 각 부처 주재관들이 함께 근무한다는 점에서 예전에 내가 경험한 여러부처 공무원들과 근무할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런 동료들이 골프 외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고 생활한다는 얘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런 우리의 분위기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한 동료가 나타났다.

A영사!, 그는 일찍이 외무고시에 소년 급제하여 외교관의 길을 걷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외무공무원이다. 준수한 외모만큼이나 유창한 영어 구사력, 논리 정연함과 신중하고 영민한 판단력, 그리고 겸손함까지 몸에 밴 그는 누가 보아도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 외교정책의 핵심 역할을 할 인물로 성장할 것임을 의심치 않을 정도로 엘리트다.

그가 부임해 오고 나는 영사업무 외 그의 이런 점들로 인해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몇 번의 회식과 출퇴근길에서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생각한대로 그는 여러 면에서 돋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 더 친해질 수 없었다.

그는 골프를 치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을 골프장에서 지내는 나로서는 그와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골프가 내기 등 부정적인 면도 있으나 5시간 이상을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지내는 과정에서 인간관계의 친교를 하기에는 상당히 좋은 점도 있는데 P영사는 골프를 치지 않으니 한계가 있었다.

나는 자카르타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으니 골프를 치라며 먼저 발령 난 사람으로 한 수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권유해보았지만 “골프 아니고도 할 것이 많은데요. 다음에 하지요”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나중에 대사가 되면 외교활동 목적상 배워놓기는 해야 할텐 데”라며 은근히 압력성 회유도 해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긴 주말과 일과 후 A영사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때울까 생각하며, 업무협의차 일과시간에 가끔 만나는 것과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여 출퇴근시 차량을 함께 타고 가는 정도로 그렇게 지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가끔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했다.

그러나 나의 A영사가 아주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식견을 가지고 생활하는 모습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 골프치기 강요(?)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기타, 피아노, 드럼, 색소폰 등 많은 종류의 악기를 수준급으로 다룰 줄 안다. 게다가 직접 노래까지 부르며 연주를 한다니 수준이 짐작이 간다.

그가 전 근무지에서 동료들과 동호회를 결성하여 자선음악회를 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의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방 한 곁이 완전히 그룹사운드 연습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악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그곳에서 틈틈이 두 아들과 연주와 노래를 하며 젊은 날 아비의 역동적인 모습을 자식들에게 각인시켜 줄 것을 생각하니 골프로 주말을 보내며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기 까지 했다. 그는 또 스케치와 수채화를 그린다.

그가 그린 작품들은 화랑에 당장 전시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의 다양한 관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퇴근시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이번 아카데미 영화 수상자에 대해서 예상했는데 모두 다 적중시켰다'는 이야기를 한적 있다.

당시 나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최근 모 잡지에 영화평론 글을 정기적으로 싣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글 어귀의 삽화도 본인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하니 이쯤 되면 혀를 두를 정도다.

나는 이런 A영사가 좋다. 무릇 공직자는 근엄주의에 빠져 자신들을 형식의 틀에 얽어매고 경직된 사고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A영사와 같이 다양성과 유연성, 창의성을 겸비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무한 경쟁시대에 국가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외교관들이 모두 A영사와 같다면, 치열한 외교전쟁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내가 더 놀랄 A영사의 관심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A영사가 머지않은 날 짬을 내 골프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치기어린 바램과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박화진 주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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