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멕시코 떠난 조선인 103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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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멕시코 떠난 조선인 103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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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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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1905년 멕시코 떠난 조선인 1033명  
  
  [세계일보] 2003-08-21 () 19면 1173자    
  
    
작가 김영하(35.사진)가 3년만에 장편소설 '검은꽃'(문학동네)을 완성했다. 그러나 책을 펼쳐드는 순간 작가 김영하의 모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입때껏 그의 작품들을 통해 드러난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 현대 사회가 아닌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 낯선 일이다.
'검은꽃'은 1905년 멕시코로 떠난 조선인 1033명의 '검은 기억'을 담고 있다. 멕시코 에네칸 농장으로 팔려간 그들은 희망이 아닌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며 또다른 절망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작가를 1905년 그 시점으로 끌고 들어간 것은 민족의 수난사를 쓰기 위한 힘은 아니었다.
4년의 계약이 끝난 뒤에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멕시코 전역을 떠돌다 '과테말라 임시정부'를 세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조선인 11명의 이야기에 이끌려 작가는 펜을 들었다. 2000년에 한 재미동포로부터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그에게 '영원히 쓰고 싶은' 소설을 만들게 한 셈이다.
이번 작품에도 여지없이 발휘된 그의 상상력은 소설 속에 분명한 선을 그려놓는 대신 언제 어디서든 넘나들 수 있는 무한한 세계를 열어놓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1905년생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은 1905년 멕시코로 떠나는 일포드 호를 생생하게 우리 앞에 그려놓는다.
'화물칸에 수용된 조선인들은 예의와 범절, 삼강과 오륜을 잊고 서로 엉켜버렸다. … 요강이 엎어지거나 깨지면서 그 안에 담겨 있던 토사물과 오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조선 땅을 벗어난 일포드 호는 몰락한 양반, 전직 군인, 도시 부랑자, 신부,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엉키며 서로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는 또다른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멕시코에 불어닥친 혁명에 휘말리며 그들 중 42명은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정변에 참여해 '신대한'을 국호로 내건 임시정부를 세우기도 한다. 무너진 국가로 인해 바깥으로 밀려난 그들은 그래도 자신 앞에 처해진 삶을 묵묵히 이끌어나간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역사 속에 묻혀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개개인의 삶을 조망한다. 역사소설의 향을 내뿜으면서도 '검은꽃'은 민족이란 이름 대신 운명 앞에 놓인 인간을 그려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곱씹어낸다. 역사 속에서도 그의 독특한 시각은 살아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24일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아이오와대로 출국한다.
/윤성정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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