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 모국 귀향 마을 사업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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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 모국 귀향 마을 사업 ‘봇물’
  • 서나영 기자
  • 승인 2007.04.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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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현지 설명회…실효성은 의문
▲ 최근 민박마을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남해군 독일마을 입구. ‘독일마을’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돌간판과 독일 국기만이 이곳이 독일마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최근 남해군, 당진군 등 지자체 및 민간업체의 재외동포 귀향마을 조성사업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업들이 수요자인 재외동포들의 요구 및 조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현실과 어긋난 방식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남 남해군은 1960~70년대 독일로 간 간호사와 광부들의 은퇴 후 귀국생활을 위해서 지난 2002년부터 ‘독일마을’을 조성하는 등 일찍부터 모국 귀향사업에 뛰어들었다. 나아가 남해군은 '독일마을'에 이어 예산 68억원을 투입해 미국식 주택과 복지회관, 체육시설 등을 갖춘 ‘미국마을’ 조성사업을 벌여 재미동포들을 대상으로 21세대의 주택 분양을 마친 상태이다.

하지만 거주 재외동포들의 복지 및 문화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독일마을’의 경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상태에서 또다시 ‘미국마을’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지적과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

남해군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독일마을이 유명해지면서 남해군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며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 등으로 남해군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마을을 현지 방문했던 한 동포(뒤셀도르프 거주)는 “김두관 전 남해군수가 처음 내놓은 마을 조성계획은 단지내 독일식공원과 빵집, 독일맥주집, 레스토랑, 수련원, 의료센터 건설 등 화려하게 설계된 마을이었지만 군수가 바뀌면서 흐지부지된 것으로 안다”며 “지자체장들은 사업 내용은 제쳐두고 임기동안 업적 늘리기에만 신경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편에서는 이처럼 잇따라 생겨나고 있는 귀향마을이 농촌지역에서 투기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분양 받은 동포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저가인 택지를 분양만 받아놓고 집을 짓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실제로 남해군에서 분양된 78필지 가운데 23세대만이 독일식 주택을 지었고, 그나마 입주한 동포는 9세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국내의 친인척 또는 관리인이 거주하거나 일부는 펜션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일부 동포들의 경우, 10년 내에는 내국인에게 양도할 수 없게 돼 있는 규정을 어기고 분양가의 2배가 넘는 선에서 내국인과 거래를 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갑자기 유명해진 ‘독일마을’을 찾는 일부 국내 관광객들이 이국적인 유럽식 정원과 주택을 보기 위해 귀국동포들이 거주하는 집안 발코니까지 올라와 사진을 찍거나 내부를 함부로 들여다보고, 민박 관광객들이 밤 늦도록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하는 등 사생활 침해가 심각해 이웃간 갈등을 빚기도 하는 등 문화적 충돌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여러 현실이 동포사회에 알려지면서 또다른‘독일마을’을 추진 중인 충남 당진군은 애초의 계획을 일부 수정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당진군은 1만 여평의 부지에 30여세대 규모의 ‘독일인마을’을 조성키로 하고 독일 현지를 방문해 투자설명회까지 개최했다. 그러나 신청자가 예상 밖으로 적어 사업 추진 여부조차 불투명한 실정이다.

벨리니에 거주하고 있는 윤덕순씨는 신청자가 적은 이유에 대해 “독일에서 나오는 연금만으로는 물가가 비싼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렵고 독일처럼 전액 의료보장이 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고령의 나이에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하는 의료비 부담이 크다”며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이에 당진군은 당초 광부와 간호사 출신으로 제한했던 자격기준을 완화한 끝에 현재까지 접수된 20세대의 신청자로 분양을 마감해 사업 자체를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당진군은 나아가 입주 희망자의 경우 1년 이내 집을 짓도록 방침을 정했다.
이번 사업을 담당한 당진군 기능개발사업단 관계자는 “실제 귀국하지 않고 투자용으로 분양 받으려는 동포들이 많아 신청자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남해 독일마을의 성공한 면과 실패한 면을 꼼꼼히 따져 보고 적용해 동포들이 고국에서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하겠다”고 말했다.

남해군과 당진군 등 지자체 외에도 민간업체가 재외동포 귀향마을을 조성하는 사례도 있다.
경기도 안성시와 경북 경주시에 재독동포를 위한 한독타운을 조성하는 내용의 ‘모국귀향마을’설명회가 실버파라다이스(대표 원완형)와 독일 GK Entwicklungs GmbH(대표 황장욱) 주최로 지난 17일 저녁 6시부터 중부독일 라팅겐에서 200여명의 동포들로 성황을 이룬 가운데 열렸다.

경기도 안성시와 경북 경주시에서는 민간업체가 지자체의 사업승인을 받아 ‘한독타운’이란 이름의 케어형 노인주거단지를 조성는 사업설명회를 독일 전역을 돌며 열고 있다.

또 다른 민간업체도 경기도 안산시에서 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실버타운 형태의 귀향마을을 조성키로 하고, 이를 동포사회에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재외동포 은퇴자에게 쾌적한 노후 안식처를 제공하고, 지자체의 인구 증가와 경제 활성화 등에 기여를 할 것이란 기대 속에 자치단체와 민간업체들이 벌이는 귀향마을 조성사업이 자칫 행정 미숙과 부동산 투기 통로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대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남해군은 최근 ‘미국마을’에 이어 추진키로 한 ‘일본마을’ 계획을 내국인 귀향마을로 변경했다. 또 강원도 춘천시 역시 ‘귀향마을’을 추진하다 여의치 않자 최근 사업 자체를 백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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