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산나무를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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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산나무를 잃었습니다
  • 홍석화 토종연구가
  • 승인 2007.04.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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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문화의 맥을 찾아서 <당산나무>
사람 사는 거야 동·서·고·금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로마의 옛 유적지에서 발견된 돌 기둥엔 “어허! 요즈음 젊은 것 들이란…”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하지요. 누군가는 또 이렇게 읊었다지요.“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하루 하루 날로 새로워지는 첨단 과학문명의 이기들이 우리들 하루하루 일상생활을 정신 없이 변해가게 만들고 있는 요즘 세상이지요. 지구촌 동·서·남·북 그 어드메서 살고 계시는 우리 동포님들도 이런 세상의 흐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시면서도, 어떤 때는 “그래봤자 나도 어쩔 수 없는 자그마한 한 인간일 뿐인걸…”하고 여기시는 경우도 있으실겁니다.

지금은 거의 그 의미를 상실해 버렸지만, 옛날 우리의 마을들엔 늘‘당산나무’란게 있었지요. ‘서낭목’ 이라고도 불렀구요.

주로 팽나무나 느티나무 종류가 많았는데, 보통 1~2백년 이상된 나무라서, 그 너른 품자락 아래는 늘상 우리들의 쉼터이기도 했고 개구장이들의 놀이터 였기도 했구요.

1년에 한 두번 정월달이나 추석때면 으례히 풍물 ‘지신밟기’나 ‘마을굿’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처 이기도 했던 당산나무-.

혹간가다 어렸을 적 ‘당산나무’의 기억을 간직하신 분들은, 지금도 꿈속에서나마 이 당산나무를 가끔은 그리워하고 계실 겁니다.

한번은 대도시서 살다가 근교 시골마을로 이사온 한 아줌마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동네 어귀에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한 고목(한 2백년 이상은 되었지만 당산나무는 아니었다고 함) 밑에서, 그 고목의 자태와 정기에 자기도 모르게 슬그머니 이끌리어, 수많은 나날들을 비바람 폭풍우에 견뎌온 지난 세월들을 생각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끄억끄억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야마오.센세이’라는 일본의 한‘농부철학자’는, 자기동네 숲에 있는 이름없는 한 ‘삼나무 고목’을 발견하고부터, 늘상 친구이자 대화 상대이자 하늘, 자연의 기운을 감읍하는 소중한 장치(과정)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더군요.

전 세계 70여 개국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제 친구 여행가에게 물어보니, ‘당산나무’를 지금도 뫼시는 지역으로는 (제3세계가 아닌 나라 중에서) 아마 북유럽의 ‘핀란드’ 정도가 아닐까 하더군요. 그곳도 점점 없어져가는 추세라지만 말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제주도나 아주 오지의 섬마을, 산마을에선 혹간가다, ‘당산나무’를 ‘당산나무’로 뫼시는 곳이 가물에 콩나듯 있기는 있다고 합니다.

요즈음 학자들의 잣대에 의하자면, 나약하고 자그마한 인간이 자신보다 엄청 큰 자연물인 ‘큰 나무’에 하늘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그 큰 나무를 통하여 ‘내려오시기도’ ‘올라가시기도’ 한다는-이른바 애니미즘(Animism)으로 정의 내리기도 하지요.

아무튼 간에, 우리는 지금 ‘당산나무’를 잃어버렸습니다. 대도시에서 하루 24시간을 정신 없이 쪼개어 지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시골에 살고 있지만 ‘당산나무’와의 교감을 잃어버린 시골사람들이나 뭐 그리 크게 다를 것도 없다고 여겨지는 그런 세월입니다.

그러다가도 간혹 기회가 생겨 어쩌다 접하게 되는 큰 나무나 숲 앞에 서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경외감과 ‘공포감’까지도 가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 입니다만-, 요즘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일반적인 ‘매장’이나 ‘화장’보다도, 특정나무 밑에 묻어서 그 나무의 거름이 되게 하고(화장하여 그 재를 묻음), 그 나무가 커가는 것을 후손들이 지켜보며 기리는-이름하여 ‘수목장’이, 소솔히 주목을 받고 행해지기도 하는 추세이지요.

그 어드메에 사시는 동포님이시든, 우리들 각자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의 ‘적당한 나무 한 그루’를 가슴 속에 정해놓고 살아가시는 건 어떨까 싶네요. 어려움이 있을 때나 큰 일의 전후에, 그저 일년에 두서너 번 찾아보고, 감상하고, 어루만지고, 무언의 대화를 나누면서…자기 자신과 가족 친지들, 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 더 나아가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편안함과 행복함’을 가슴 속 깊이 다소곳이 간구하면서요. 그것도 한 갈래 이름없는 ‘참선’이요 ‘명상’이요 ‘기도’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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