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6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키 큰 나무 아직도키 큰 나무를 보면한번쯤 올라가 보고 싶어진다어린 날 나무를 타듯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꿈을아직 다 접지는 못한 모양이다추락하는 것이 두려워지는 나이가 되고부터는아파트 십사 층이 무섭고백화점 꼭데기가 무섭고번지 점프 같은 건 말만 들어도 어지러운데아직도키 큰 나무를 보면올라가 보고 싶어지는 까닭은더 높이 날기 위해 쉬어 가는 새처럼잠시 날개를 접고 먼 하늘을 바래고 싶은 것이다. 기고 | 손영란 | 2006-11-30 17:21 늙은 직녀 이른 새벽에 홀로 깨어나할머니는 바느질을 했다.커다란 궁둥이에서 실오리 한 가닥 뽑아내가는귀 먹은 바늘귀에 꿰어놓고장로 서랍들을 죄다 뒤져방안 가득 옷들을 헤쳐 놓으면잠귀 밝은 어머니는 깨어할머니의 방문을 열어젖혔다.-에미야, 헤진 옷들이 많구나. 이 속곳 좀 보렴.-어머니, 그건 어머니 수의잖아요!할머니의 잠은 당신의 커다란 궁둥이처럼초저녁 쪽으로만 자꾸 뭉쳤다가이른 새벽이면 실타래에서 풀려 나와부엌과 마루의 뒷간의 어두컴컴한 구석만 찾아다니며거미줄을 걸쳐놓았다.이른 새벽에 눈을 뜬아버지의 목마른 취기가가끔식 그 거미줄에 걸려들면-에비야, 내 바늘이 보이지 않는구나. 네가 숨겼느냐?-어머니, 실꾸리는 이제 그만 치우세요. 집안이 온통 실밥투성이예요!바늘겨레처럼 자식들을 품 기고 | 정철용 | 2006-11-23 09:15 이것이 다가 아니다 첫 새벽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잠자리를 박차고운명처럼 나서는 일터온갖 때 묻은 빨래를 빨아주고,주문 복잡한 빵을 싸주고,청소를 해주고, 헌집을 고쳐주고,힘겨운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일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오버타임을 하면 아플 시간조차 없이 살아도이방의 삶엔 외로움으로 남는 시간이 있다.가슴앓이 향수로 잠 못 드는 밤들이 있다.속엣말 응어리진 가슴들이 있다.그래도 이게 다가 아니다.모국어가 아니어서, 나이가 들어서 가꾸만 가물대는 외국어눈치로 알아채고 체면, 인격 다 삼키는 반방어리 삶그러나 결코 이게 다는 아니다.제 몸 기꺼이 다 내어주고껍데기로 떠오르는 우렁이가 된다 해도이게 다는 아니다.그 어미 살 먹고 자란 새끼우렁이는 있는 것이다. 기고 | 전현자 | 2006-11-20 11:21 사진 한 장 좐슨 씨가 카메라를 들고 서서나와 그의 거리를 팽팽히 당긴다잠시, 적막이 그대로 묵직하게 끼여있다치-즈그리고 플래쉬가 터졌다공간이 터지는 것을, 깨지는 것을,내가 적나라하게 파열했다순간이 이렇게도 유리처럼깨질 수가 있다니.그때 산산조각 난 유리의 날개를 보았다날았다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얇은 종이속에온전히 터짐으로써,비로소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되었다 기고 | 신지혜 | 2006-11-03 13:54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111213141516171819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