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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손으로 쳐서 승부를 내는 수박희(手搏戲)
icon 김민수
icon 2012-11-10 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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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손으로 쳐서 승부를 내는 수박희(手搏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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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년 1월 21일 태종이 병조(兵曹)와 1466년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로 개칭된 의흥부(義興府)에서 힘센 역사(力士)가 서로 손과 손으로 쳐서 승부를 내는 수박희(手搏戲)로 사람을 시험하여 방패군(防牌軍)을 보충하였는데 세 사람을 이긴 자로 방패군에 보충하였다.1411년 6월 10일 갑사(甲士)를 선발(選拔)하였다.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의흥부(義興府)와 병조(兵曹)에서 무사(武士)를 흥인문(興仁門) 안에 모아 말 타고 활쏘기 기사(騎射)·걸으면서 활쏘기 보사(步射)를 시험하여 갑사(甲士)에 충당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능하지 못한 자를 삼군부(三軍府)에 모아 놓고, 달리기 주보(走步)·수박희(手搏戲)를 시험하여 3명 이상 이긴 자를 모두 취(取)하고 능하지 못한 자는 모두 도태(陶汰)시켰다.1416년 7월 1일 태종이 상왕(上王) 정종(定宗)을 경회루(慶會樓)에서 받들어 맞이하여 헌수(獻壽)하고 노래 부르고 화답하여 지극히 즐기었으니, 상왕의 탄신(誕辰)인 때문이었다. 세자(世子)와 여러 종친(宗親)이 대궐 안의 잔치에 신하가 자리를 함께 하는 시연(侍宴)을 하였다. 이어서 입직(入直)한 대소 신료(大小 臣僚)에게 술을 주고 갑사(甲士)와 방패군(防牌軍)으로 하여금 막대로 서로 싸우게 하여 승부를 내는 각투(角鬪)하게 하고 또 힘이 센 장사(壯士)나 역사(力士)가 서로 손과 손으로 쳐서 승부를 내는 수박희(手搏戲)를 하게 하고 이를 구경하였다.1416년 8월 3일 경복궁(景福宮)에 거둥하여 상왕(上王)을 받들어 맞이하는 봉영(奉迎)하여 경회루(慶會樓)에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세자와 종친이 시연(侍宴)하였다. 갑사(甲士)와 방패군(防牌軍) 중에 힘이 있는 자를 모집하여 수박희(手搏戲)를 하게 하여 사직(司直) 윤인부(尹仁富)에게 쌀·콩 각각 5석을 주었으니 수박(手搏)을 잘하였기 때문이었다.1417년 7월 1일 태종이 경복궁(景福宮)에 가서 상왕(上王)을 봉영(奉迎)하고 경회루(慶會樓)에서 헌수(獻壽)하니 세자와 여러 종친이 시연(侍宴)하였다. 어가를 따른 대소 신료에게 술을 주었다. 장사(壯士)를 뽑아서 수박희(手搏戲)를 구경하고 지극히 즐기다가 파하였으니, 상왕의 탄신인 때문이었다. 상벌에 관한 임금의 뜻을 담당 관아에 전달하는 전지(傳旨)하기를,“신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중국에 보내던 사신(使臣) 정조사(正朝使)의 종친과 관원을 수행하며 시중드는 노예 근수노(根隨奴)로서 장사하던 사람이 죄를 입은 연고를 내게 고하지 않고 상왕이 거둥하는 어가(御駕) 앞 가전(駕前)에 호소하였으니 정상과 법에 죄주어야 하겠으나, 오늘은 상왕의 탄신이니 특별히 상왕을 위하여 이를 용서한다.”하고, 인하여 관가에 몰수한 단필(段匹)을 돌려주라고 명하였다.

1419년 6월 20일 노상왕(老上王) 정종(定宗)이 모화루(慕華樓)로 피서하니 상왕과 세종이 나아가 문안하였다. 미리 장사(壯士)를 뽑아 모화루 아래에 수박희(手搏戲)를 시키고 관람하였는데 승려 해연(海衍)이 힘이 세어 여러 사람에 뛰어나니 명하여 머리를 길러 승려가 도로 속인(俗人)이 되는 환속(還俗)하게 하고 목면(木綿) 1필을 하사하였다. 진무(鎭撫) 김윤수(金允壽)가 8인을 이기니 또한 상을 주고 이에 잔치하니 대군(大君)과 2품 이상은 시연(侍宴)하고 세종이 노상왕에 장수를 비는 뜻으로 술잔을 올리는 헌수(獻壽)하니 상왕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형제가 이와 같이 있으니 주상은 다른 염려에 수고하지 말라.”하고 각각 차례로 술잔을 드려 극진히 즐겨하고 날이 저문 뒤에 환궁하였다.7월 1일 노상왕(老上王) 정종(定宗)의 탄일(誕日)이므로 상왕이 세종(世宗)과 더불어 노상왕에게 청하여 경복궁에 행차하였다가 경회루에 나아가니 미리 수박(手搏)을 잘하는 자 50여 명을 뽑았다가, 누하(樓下)에서 승부를 겨루는 것을 관람하게 하니, 갑사(甲士) 최중기(崔仲奇)가 6사람을 이겼으므로, 정포(正布) 3필을 하사하고, 한유(韓宥)는 4사람을 이기매, 정포 2필을 하사하였다. 끝난 뒤에 헌수(獻壽)하니 종친 및 병조 당상·1433년 승지(承旨)로 개칭한 대언(代言) 등이 잔치에 시연하여 각각 차례로 술잔을 돌리고,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연구(聯句)를 짓게 하였다. 또 명하여 번갈아 춤추게 하니 노상왕(老上王),상왕(上王)도 또한 일어나 춤추었다. 날이 저물어서 파하였다.1421년 5월 18일 세종이 상왕을 모시고 대산(臺山:서울 광진구) 낙천정(樂天亭)에 거둥하여 오위(五衛)의 진(陣)을 크게 군대를 정렬한 다음 병사들의 훈련 상태를 검열하는 열병(閱兵)하였다. 이보다 앞서 상왕이 참찬 변계량에게 명하여, 옛날의 제도를 상고하여 진법(陣法)을 이룩하게 하고, 세종이 대궐 안에서 또 그린 진법(陣法) 한 축(軸)을 내어 주니, 변계량이 참고해서 연구하여 오진법(五陣法)을 만들어 올리므로 훈련관(訓鍊觀)으로 하여금 이 진법에 의거하여 교습(敎習)하게 하더니 이 때에 와서 삼군(三軍)이 변하여 오진(五陣)이 되었으나 차례로 잃은 병졸이 없었다. 이미 열병(閱兵)을 하고나서 손으로 서로 치는 놀이 수박희(手拍戲)를 보고 술잔치를 베풀고 풍악을 연주하여 중군(中軍)·좌군(左軍)·우군(右軍)의 삼군(三軍)의 장수를 위로하는데 종친(宗親)·부마(駙馬)·의정부 당상(議政府 堂上) 이화영(李和英)·연사종(延嗣宗)·조말생(趙末生)·김익정(金益精) 등이 잔치에 배석(陪席)하였다.1431년 3월 28일 경회루(慶會樓) 북쪽에 나아가 종친들의 활 쏘는 것과 역사(力士)의 수박희(手拍戲)를 관람하였다.
2012-11-10 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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