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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大韓赤十字) 총재 의친왕(義親王)
icon 김민수
icon 2012-10-27 10: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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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大韓赤十字) 총재 의친왕(義親王)




1955년 대한제국 황태제(皇太弟) 의친왕이 붕어한 안동궁(安洞宮)은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있었는데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가 원자(元子)를 얻어 왕세자로 책봉하고 왕세자의 가례를 거행할 별궁(別宮)을 미리 마련하고자 영건을 명하고 경연당(慶衍堂) · 정화당(正和堂) · 현광루(顯光樓) · 정상루(定祥樓) 등의 건물이 건립했다. 1881년 세자빈으로 민태호(閔台鎬)의 딸이 간택되었으며 1882년 2월 22일 안동궁에서 가례가 거행되었다. 대한제국 2대 순종 융희제와 순명황후 민씨의 가례(嘉禮)는 큰 경사였으며 역대 궁중혼례 중 가장 성대하고 호화스러웠다. 안동궁(安洞宮)은 대한제국 황실 가례(嘉禮)의 거행을 위한 별궁(別宮)으로 이용되었는데 1904(광무 8)년 순명황후 민씨가 황태자비로 봉해지고 얼마 후 붕어함에 따라 1906(광무 10)년 윤택영(尹澤榮)의 딸이 간택되어 광무 11년 1월 순종 융희제와 순정황후 윤씨의 가례(嘉禮)가 거행되었다. 문화재청은 대한제국 황실 가례소(嘉禮所)이며 대한제국 3대 황제(추존) 의친왕이 붕어한 안동궁(安洞宮)을 서울시 종로구 경복궁 궐외각사 삼청전,소격서,성수청,장원서,규장각,장생전,종친부,사간원 동남쪽에 안동궁(安洞宮)의 역사문화경관에 반하는 현대 건축물, 시설물의 신축(新築)·증축(增築)·개축(改築)·이축을 금지, 2층 · 10m 이하로 층고를 제한하고 택지 조성이나 토지의 개간 또는 형질 변경, 수목 심기 및 벌채 또는 토석류의 채취·적취, 도로의 신설·확장 및 포장 등을 제한하여 원형복원하여야 한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제(추봉) 의친왕(義親王)은 서울시 종로구 사동(寺洞)에 있던 의친왕(義親王)의 친왕부(親王府)인 사동궁(寺洞宮:원각사(圓覺寺)의 서쪽)에서 1877년 고조(高祖) 광무제와 후궁 귀인(貴人) 장씨(張氏)의 황자(皇子)로 탄강(誕降)하였으며 1895년 특파대사에 임명되어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유럽을 순방하고 1900년 8월 의친왕에 책봉되었으며 1906년 7월 12일 대한적십자사 총재(大韓赤十字社 總裁)가,1906년 4월 8일 육군 부장(陸軍 副將)이 됐다. 1905년 10월 27일 칙령(勅令) 47호 대한적십자사규칙(大韓赤十字規則)을 재가(裁可)하여 반포하였다.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는 황제 폐하의 지극히 높고 지극히 인자한 보호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며 빈곤한 사람, 상한 사람, 앓는 사람의 구호를 목적으로 하고, 자연 재해 또는 사변으로 상한 사람, 앓는 사람을 구호한다. 대한적십자사에는 통상 직원 외에 총재(總裁) 1인이 황족(皇族) 중에서 황제의 명령으로 임명되어 본 사의 사무를 통할(統轄)하며 부총재(副總裁) 1인과 사무관(事務官) 1인을 두어 총재의 사무를 보좌한다. 본 사는 1863년 10월 스위스의 제네바부에서 개설된 만국회의 의결과 1864년 8월 당해 부(府)에서 체결한 조약에 관련된 규정의 주된 취지를 따른다. 본 사를 유지하는 자본은 첫째, 제실(帝室) 은사금(恩賜金), 둘째, 독지 자선가(篤志慈善家)의 기증금(寄贈金), 셋째, 본 사의 업무에서 발생한 특별 수입금이다.

1905년 12월 12일 칙령 54호 대한국적십자사관제규칙(大韓國赤十字社官制及規則)을 재가하여 반포하였다.본 사는 대황제 폐하의 지극히 높고도 인자하시며 거룩한 덕에 의하여 설치되었다. 적십자사는 대체로 전시 및 평상시의 상한 사람과 앓는 사람을 보살펴서 치료하는 데 힘씀으로써 그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황제 폐하, 황후 폐하, 황태자 전하, 황태자비 전하 및 황족의 존중과 보호를 받는다. 직원은 총재(總裁)로 황족 1인, 사장(社長)으로 칙임관(勅任官) 1인, 부사장(副社長)으로 칙임관 2인, 교육장(敎育長)으로 주임관(奏任官) 1인, 사무장(事務長)으로 주임관 1인, 교관(敎官)으로 주임관 3인, 사무관(事務官)으로 주임관 3인, 교원(敎員)으로 판임관(判任官) 3인, 사무원(事務員)으로 판임관 3인, 간호졸 감원(看護卒監員)으로 판임관 1인, 간호부 감원(看護婦監員)으로 판임관 1인이다.의친왕(義親王)은 1919년 대동단(大同團)과 모의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망명을 결정하여 김가진(金嘉鎭)·전협(全協) 등과 함께 33인 명의로 최후의 1인까지 항전을 벌일 것을 강조한 선언서를 준비하고 11월 탈출을 감행하여 압록강을 건너 대한국령 간도의 안동(安東)에 도착했으나 일본제국주의 경찰에 붙잡혀 강제 송환되었으며 일제의 도일(渡日)을 거부했고 일제의 삼엄한 감시하에 배일정신(排日精神)을 고수했다. 대한제국 3대 황제(추존) 의친왕(義親王)의 친왕부(親王府)인 사동궁(寺洞宮)을 서울시 종로구 사동(寺洞)의 공신(功臣)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 충훈부의 남쪽,세조 11년(1465년) 창건한 원각사(圓覺寺)의 서쪽에 사동궁(寺洞宮)의 역사문화경관에 반하는 현대 건축물을 철거하고 원형복원하여야 한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의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제(추봉) 의친왕(義親王) 별궁(別宮) 성락원(城樂園)은 산 언덕을 등지고 좌우에 청룡·백호의 산줄기가 벌려선 형국에 자리잡고 있다.앞뜰은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쌍류동천(雙流洞天)과 안뜰 앞을 막아 아늑하게 감싸 만든 용두가산(龍頭假山)이 있고 엄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안뜰은 본재누각(本齋樓閣) 영벽지(影碧池) 폭포가 있으며, 생활 수학 수양의 기능을 하는 공간이다. 영벽지(影碧池)는 인공이 가해진 자연 연못의 진수를 보여주며 여기에 비치는 그림자는 공간의 깊이를 더해 준다. 뒤뜰은 송석(松石)과 연못이 있는 건물군 뒤의 후원으로 정자가 있어 자연의 풍치를 음미할 수 있으며 이 정자 안에는 노송이 지붕을 뚫고 서 있다. 서쪽 아래 지역에 고요한 늪이 있고 북쪽에는 물길을 파서 인공폭포를 만들었다.
2012-10-27 10: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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