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까마귀 선언
icon 까마귀 둥지
icon 2006-01-27 23: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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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선언


나에게는 고상한 취미가 하나 있다. 나의 고상한 취미란 무엇일까. 바로 인간의 팬티를 훔쳐보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팬티가 보고 싶다. 왜 팬티가 보고 싶을까. 인간은 팬티를 입고 있으니깐. 그럼에도 우연히 노빵아가씨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외면하게 되는 건 웬 일일까.

지난 해 3월에 나는 나의 고상한 취미를 몸에 지니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부에 바뻐, 생활에 시달려 취미생활을 할 여지가 없었다. 흉년에 흉년이 겹치니 나의 고상한 취미는 녹이 쓴 농꾼의 낫처럼 무디어져 있었다. 이대로 나두면 금년 농사도 망할 것 같다는 위구감이 든다.

한 학기가 지나고 두 학기가 지났다. 개학하면 나의 한국생활도 만 일년을 기록한다. 요즘 와서 하루 하루가 소중해진다. 장가를 가던지, 시집을 가던지, 뭔가 하기는 해야겠는데, 나는 나의 부모님께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다. 일년 동안 나는 뭘 하고 있은 거지. 재미나는 팬티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오늘은 나의 생일, 한국으로 건너와 처음 쇠는 생일이다. 주위의 축복을 받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내일은 그믐날이다. 귀성할 놈은 귀성하고, 귀국할 놈은 귀국하니, 축하해줄 친구도 없고 사랑해줄 여친도 없다. 그러고 보니 소주가 제일 좋은 친구로다.

오늘 저녁 소주와 사랑을 해본다!

E-mart에 가서 노르웨이산 연어 한덩이를 사왔다. 할인 50%, 사시미 만들고 나머지를 파는 것 같다. 살 때는 꽤 먹음직해보였는데, 칼도마에 놓고 쪼개니 겨우 20쪼각이 나왔다. 소주 한잔에 한쪼각이면 대충 소주 두 병이다. 와사비 간장에 한점 찍어먹어보니 세상 별미다.

여러분, 까마귀의 생일 축하해주세요..^^

살다보면 인생살이란 별 거 아니다. 손님없이 혼자 세는 생일이지만, 그래도 격식은 갖춰야겠다 싶어, 어제밤에 먹다 남은 왕만두에 촛대 하나를 꼽았다. 등불을 끄니 밥상 위에서 하늘 거리는 빨간 촛불이 귀엽다.

촛불은 누구를 위해서 타고 있을까. 나는 누구를 위해 생일을 쇠고 있을까.

촛불은 서서히 촛대를 먹어들어간다. 나는 자아를 잊고 촛불을 지켜본다. 마치 한 인간의 인생을 지켜보듯 진지하게. 조금 뒤 나는 한계를 느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기원한다.

- 일본사람들의 팬티를 훔쳐봤다. 중국사람들의 팬티를 훔쳐봤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이 어떤 팬티를 입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새해에는 열심히 한국사람들의 팬티를 훔쳐보리라. 내가 한국으로 건너온 목적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일년동안 왜 아무것도 못 보았을까. 내가 자세를 너무 높힌 것이 아닐까. 새해에는 자세를 한층 더 낮추어야겠다. 자본주의나라여서 팬티를 공짜로 보여주는 한국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자면 돈도 많이 벌어야겠다.

까마귀 화이팅~~




^^
2006-01-27 23: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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