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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시론>특별한 찬사보다 더 큰 인정
icon 임용위
icon 2007-02-16 10:5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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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시론>

특별한 찬사보다 더 큰 인정

공인에게 보내야 할 시선을 생각하며




매일 발행되는 한인 대상의 신문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면서 벌써 3부작의 1부를 마감했다. 어차피 독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쓴 소설은 아니었지만, 소설도 내게 그리 요원한 분야만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만족한다.

이왕 시작한 김에 끝은 봐야하는데 여의치가 못하다. 연재하는 동안에 이미 탈고를 마친 장편이 수도 없이 고쳐지고, 구성(plot)마저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 이 소설의 결과가 어떻게 치달을지는 나도 궁금하다.

필자는 소설 한편을 감당하기도 벅찬데 참 많은 단체에 소속해있다. 잘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게 문제였다. 결국은 내가 속한 단체의 회원들에게 누만 끼치고 말았다. 글 쓰는 사람은 글 쓰는 그 테두리의 한 공간만 지키지도 어렵다는 걸 절절히 실감했다.

장편 식구(食口)는 올 가을에 책으로 나올 계획이다. 극단 실험극장이 그간 필자의 작명으로 무대로 올려 졌던 5개의 희곡작품(희곡집)을 출간하기로 했던 약속에 포함되어 나의 첫 장편집이 실행에 옮겨지는 것이다.

이젠 조금씩 멕시코 이민생활을 청산할 시점에 다다랐다.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7년여 세월이다. 그동안 나는 멕시코에서 무엇을 이룩했고, 무엇을 얻어냈을까?

내가 가졌던 것만큼의 소질을 밖으로 표출했던 것에 대해선 100% 만족한다. 희곡작품 하나(굿나잇 코리아)로 큰 상도 하나 받았고, 분에 넘치게 재외동포 재단에서 마련해준 고국의 대 극장 공연에서 호평도 받았다. 멕시코가 내게 준 의미 깊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사람들 속에서는 크게 실패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눈살 찌푸리게 했던 이기주의자였고 나란 사람에 관한 그 이미지는 꽤 오랫동안 동포사회에서 나를 지배했다. 그런 속에서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때때로 행복할 수가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동포 의학박사 문장호님이다. 특별한 얘기로 호들갑을 떨어준 적도 없었고 자주 만나 문학에 관한 조언을 들려준 적도 없는 분이셨지만, 박사님은 박사님이 가꾸고 지켜온 의학 분야의 전문성에 버금가게 나를 인정해 주셨다.

누군가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꾸준히 인정해준다는 것은 그 어떤 특별한 찬사보다 더 큰 용기가 된다. 문 박사님의 한 서너 번 쯤 됐음직한 우연한 자리에서의 격려는 그 때마다 내게 절실하고도 꼭 필요한 거름이 되었다. ‘굿나잇 코리아’를 쓸 때 그랬고, 또 올가을에 실험극장의 153회 정기공연으로 공연될 ‘창백한 여인의 세 가지 이름’을 쓸 때 또 그리하셨다. 결국 두 작품의 첫 독자가 문 박사님이었고, 첫 독자가 지적해 주었던 문체상의, 구성상의 문제점이 완성도 높은 희곡작품으로 태동하는데 큰 작용이 됐다.

박사님과 필자는 재외동포라는 것 말고도 또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전혀 무가치한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흔들릴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재외동포 생활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겪을 수 있는 요소겠지만, 전혀 겪어서도 안 되고 겪을 가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에 사로잡히기도 한 다는 걸 주변 사람들은 거의 모르고 있다.

건방진 얘기 같지만, 무릇 공인(公人)이 공인 노릇을 재대로 못하는 사회에서 공인다운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은 뒤늦게라도 바로잡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가진 전문성이 여러 사람들에게 편리와 이익을 제공해 주고 그 여러 사람들에게 진정한 혜택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그가 좀 더 편한 자리에서 그 전문성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박사님께 진료를 받아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다른 분야에 매진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보호하려는 가치관을 지켜볼 때마다 얼마나 자기 분야에 자신감을 갖고 성실하게 매진하는 사람인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주 작은 그 것! 그렇게 타자를 인정해 주고 있는 누군가에게 사람들은 크게 삶의 가치와 보람을 얻는다. 공교롭게 박사님을 거론하면서 나까지 공인 대열에 올리는 실수를 범하긴 했지만, 결코 필자는 공인 자격도 없고 공인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란 걸 밝혀두고 싶다. 다만 어쩌다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일을 하다 보니 생각 없이 툭툭 던져내는 말들 속에 파묻혀 가끔씩은 살고 싶지 않을 때도 더러 있어서 해 본 말이었다.

임용위/재멕 작가
2007-02-16 10:5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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