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icon 장동만
icon 2005-11-07 04: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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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온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미국 기밀 정보를 빼내 한국에 제공했다.”

요즘 한미간에 말썽이 되고 있는 '첩보사건'의 주인공인 미 해군 정보 분석가 Robert C. Kim (김채곤)씨가 사건 초기에 한 말이다. 수사가 진척됨에 따라 그 순수성과 정직성이 점차 변색되고 있긴 하지만, “그의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 모두에게 가슴에 와 닿는 호소력이 있는데,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의 이번 행위를 두고 고국의 많은 사람들은 “한민족으로서 조국을 위해 장한 일을 했다"는 심정적인 동감과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이곳 일부 동포 특히 미 공공 기관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미국 법) 위법 행위가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이유만으로 합리화 될 수는 없다"는 비난과 눈총을 주고 있다고 한다.

김씨와 더불어 한국을 조국으로 갖고 있고, 또 김씨와 똑같이 이 땅에서 미 국적을 지닌 미국 시민으로서, 양편 모두 그 타당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이 땅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 땅에서 법적으로 분명히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 시민이다. 시민권 받을 때 “옛 국적을 포기하고 선량한 미국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고 서약을 했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 정서는 어떠한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나라는 한국"이다. 한글 한국말을 주로 쓰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풍습과 한국 전통 속에서 산다.

법과 제도상으로는 미국민, 감정 정서적으로는 한국인, 이같은 하이프네이티드 아이덴티티(Hyphenated Identity)가 일상 생활에서는 물론 이번 김씨 사건과 같은, 조국 한국과 사는 미국 간에 미묘한 일이 있을 때 그 가치 판단을 어렵게 하고, 또한 적잖은 심리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한국서 태어났지만 태평양을 건너 이 땅에 와서 지금 미국 시민으로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아이덴티티가 다분히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적 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사물을 보는 안목, 그리고 그 사고 방식도 이에 걸맞게 세계인으로서 범(汎) 인류적이어야 될 줄 안다.

그런데 코스모폴리탄적인 안목 사고 방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가치 척도가 국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초월, 범 세계적 전인류적 가치 기준에 그 바탕을 둔다. 즉 나와 나의 어떤 행위가 어느 특정 국가 특정 민족에게 이로우냐, 해로우냐를 생각하기에 앞서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즉 사랑 평화 자유 향상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김씨의 행위를 보면, 오직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 법을 크게 어겼다는 것은 호소력이 약하다. 미국 법을 어긴 그의 행위가 진정 설득력을 지니려면, 그가 다루는 그 정보의 확산(proliferation)이 특정 국가, 특정 민족이 아닌 전 세계 전 인류의 평화-이번 경우는 특히 남북한 관계가 되겠지만-에 이바지한다는 신념에서 우러나왔어야 한다.
우리의 이상과 의무는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의 이익만도 아닌, 우리가 그 땅에서 ‘
살고 있는 미국’의 이익만도 아닌, 전 세계 온 인류의 평화 자유의 증진과 향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장동만: e-랜서 칼럼니스트, 10/09/96 조선일보 (뉴욕판)>

저서: ‘조국이여 하늘이여” & “아, 멋진 새 한국”
http://kr.blog.yahoo.com/dongman1936
2005-11-07 04: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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