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문화, 언어 그리고 동포신문
icon 김필
icon 2005-08-01 08: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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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바 68호, 1999년 6월15일

문화, 언어 그리고 동포신문
-문화충돌의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얼마전 사석에서 한 유학생이 관광객 가이드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었는데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같아 소개한다. 그는 최근 국제박람회를 참관하러 온 한국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을 담당했다. 이들을 안내하던 중 어느날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게 됐는데 그들은 양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입맛이 맞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갑자기 짐 꾸러미속에서 태연히 김밥을 꺼내놓고 먹기 시작하더라는 것이었다.

화들짝 놀란 이 가이드는 국제도시 빠리에 오셨으면 이곳의 예의를 지켜주셔야 하지 않느냐고 사정하듯이 말했단다. 그러나 그 지방공무원들 일행은 아랑곳없이 김밥을 다 먹어치웠으며 공짜 물까지 한잔 가져오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말을 듣고 또 다른 사람은 단체 여행객들이 한국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며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꺼내서 마시는 사례를 들었다.

그래서 자연히 한국의 문화수준이 좌중의 화제에 올랐다. 빠리에 공무로 나올 정도면 한국사회에서 결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닐 것이고 교양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째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더구나 그 공무원들이 한국에서 일하는 지역에도 맥도날드가 들어서 있을 수 있는데 거기에서도 김밥을 꺼내서 먹겠느냐, 또는 빠리의 한국식당에서 소주를 꺼내 마시는 사람도 한국에서는 그런 짓을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처럼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함부로 해대는 것은 더 비난받을 짓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 난감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득 대학시절 예비군훈련을 받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80년대에는 군대를 갔다온 예비역 학생들은 1년에 한번씩 있는 일주일간의 동원훈련대신 간단한 사격훈련과 함께 교내에서 정신교육을 받는 정도로 그쳤다. 국방부에서 학생들에게 특전을 베풀어 주었던 셈이다.

이때 학교의 어느 교직원이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평소에 그처럼 착실하던 학생들이 예비군복을 입고 나면 갑자기 행동이 백팔십도로 달라진다며 이들이 과연 자기가 평소에 보아왔던 그 학생들이 맞는지 알 수 없다고 놀라워했다. 예비군복을 입은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교내에서 고스톱을 치고 심지어는 대낮에 교정의 나무에다가 오줌을 갈겨댔다.

빠리의 레스토랑에서 싸들고온 김밥을 꺼내먹는 한국관광객 일행과 예비군복을 입으면 교정에서 방뇨를 하는 학생들, 어쩐지 대귀가 맞는 것같지 않은가.

전혀 그렇게 할 것같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엉뚱한 일을 집단적으로 해댄다면 사회적 맥락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학생들은 군복을 입자마자 그들이 삼년동안 젖어있었던 소위 군사문화, 병영문화 속으로 자신들도 모르게 빠져들어간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듯이 그들은 군대에서 하던 식대로 행동을 한다. 그러다가 다음날 예비군훈련이 끝나고 학생으로 다시 돌아오면 자기가 그렇게 했던가 하며 스스로도 창피해 하는 것이다.

빠리에 나온 공무원들 일행도 한국에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맥도날드에서 김밥 꺼내 먹은 것을 창피해하지 않을까. 일상 업무에 죄여 생활하다가 갑자기 주어진 자유로운 공간속에서 그것을 마음껏 구가하려는 충동이 낳은 해프닝일 수 있다. 그들도 일상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결코 그런 몰상식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예비군 학생들과 다름없다.

그들은 떠나가버렸지만 그들이 남긴 행위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또 우리는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접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 행위의 근저에 있는 심리 기제까지 생각해주어야 할 것같다.

빠리를 방문한 지방공무원들은 낯선 문화속에서 촌닭처럼 어리둥절해하며 이곳의 까다롭게 보이는 관습을 지켜나가기보다는 과감하게 '우리 식'을 밀고나감으로서 낯선 곳에 나온 불안감을 이겨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이면서도 예비군훈련을 하는 이틀동안 갑자기 군인으로 존재가 전환된 학생들은 갑자기 대학이라는 '고급 문화권'과 군복문화와의 충돌에 혼란을 느끼다가 그 당혹감을 묵살하기 위해 병영문화를 따라갔을 수도 있다.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러나 이 말에는 별다른 긴장감이 없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따라 살고 있거나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면 절실한 문제로 떠오른다. 바로 우리같이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문화관습은 한마디로 '익숙한 것'이다. 객관적인 수준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그 나라 고유의 조건에서 배태된 관행들은 일단 존중받아야 한다. 빠리에서 보는 아랍인들이 프랑스의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자기네들 식대로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들도 다를게 없다. 남북 미주이나 유럽,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한국교민들의 특성이 일관된 모습을 보게 된다. 각 나라마다 문화가 다름에도 각국의 교민들이 일정한 한국인의 특성을 잘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빠리 생활 10년이 넘었다는 한 교민은 이런 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프랑스에 처음 유학와서 열심히 프랑스의 관습과 문화를 배우고 익히려 했는데 어느 때인가부터 그런 생활이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나더라는 것이다. 프랑스생활이 한 7년쯤 지나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며 그는 그저 우리 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함께 자리했던 까페에서 그는 자기 말에 대한 간단한 '실제 사례'까지 보여주었다. 까페 주인이 단체 손님이 여럿 왔으니 자리를 저쪽으로 옮겨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그는 화를 내며 이 요구를 거절했다. 동석했던 필자도 무안할 지경이었다. 그의 오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안간힘같이 보여 오히려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우리 문화와 관습이 외국에 나와서 고생하는 사례들이다. 그렇다고 경우없는 행위들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성의를 다해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사람 한사람이 변화할 때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다.

또다른 어떤 사람은 맥도날드에서 김밥을 먹는 한국사람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다른 외국인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일어서서 가로 막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는 차라리 후자에 지지를 보낸다. 당장 창피한 모습을 교정할 수 없다면 가리기라도 해야 할 것이라는 쪽에 따르고 싶다. 더구나 오래된 문화에 연원이 있는 현상들에 대해 일일이 설득한다는 것도 무모한 듯이 보인다.

여기서 브레히트의 소나무 이야기를 들어보자.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런 이야기를 그의 시에 담았다.

어느 날 시인이 마을 뒷산에 올랐다가 줄기와 가지가 이리저리 뒤틀려 있는 소나무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가며 참 지지리도 못났네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 브레히트는 사람들에게 왜 소나무가 서있는 땅이 얼마나 척박한가는 보지를 않는가 라고 말한다. 그 소나무는 주변이 모두 돌밭이라 잡풀만이 우거진 가운데 서있었다. 나무가 비옥한 땅에 자리잡고 있으면 그처럼 가지들이 뒤틀리지 않는다.

못생긴 소나무를 욕하기 보다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땅에 박혀있는 돌과 자갈들을 그리고 깨진 병조각이 있다면 그것까지 파헤쳐 걷어내주고 그 토양에 필요한 비료를 구해다가 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브레히트의 가르침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발딛고 있는 땅에 눈을 돌려보자. 그러면 바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자기중심주의, 가족 이기주의 그리고 군사문화의 잔재들이 소나무가 딛고 있는 땅에 박힌 돌조각 유리조각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땅에 뿌리내리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붙들고 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봐야 서로 속이 상할 뿐이다. 그들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현대사에서 파생된 잘못된 관행의 피해자인데 그들에게 도덕적인 각성을 촉구하며 괴롭히는 것도 마땅치 못하다. 더구나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우리 아닌가.

이제는 다시 눈을 돌려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문제를 들여다보자. 프랑스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이 한사람도 예외없이 겪어야하는 고통스러운 문제가 있다. 바로 이중 언어로 대표되는 문화충돌의 문제다. 한국에서 성인교육까지 마치고 온 사람들의 경우 이미 한국어가 사고수행언어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언어심리학 책을 들쳐보지 않더라도 사고활동은 언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새로운 언어인 불어가 사고체계내에 틉입하면서부터 혼란은 예정된다.

주위의 한 유학생은 처음 유학왔을 때의 경험하나를 털어놓았다. 그는 학교 입학에 관한 간단한 사항을 물어보려고 어느 여학생에게 전화를 했다가 라면을 다 태운 일도 있었다고 말한다. 라면을 올려놓고 간단히 통화하려했는데 그 여학생이 도무지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자 혹시 내게 관심이 있지 않는가 기대했다가 라면이 타는 냄새를 맡게 됐다는 이야기다. 언어에 대한 굶주림이 애꿎게도 남의 라면을 태운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문화전쟁의 핵심도 언어에 관한 것이다. 한세대가 지나면 전세계적으로 살아남을 언어는 영어와 중국어뿐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영어의 높은 실용성으로 인해 각국의 다양한 언어들은 사투리로 전락하리라는 예상이다.

몇해전에는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언어 코드 숫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제 협상을 벌인 바가 있다. 스위스에 모인 각국의 언어정책 담당자들은 인터넷상에서 구현되는 언어코드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했다. 지금 인터넷상에서 한글 고어들이 자유롭게 사용되지 못하는 것은 국제 협상에서 한글 언어코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전쟁은 언어전쟁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실제로 국가간의 대립보다도 언어문화권 단위의 대립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우리와같이 외국어와 끊임없는 충돌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어의 문제는 외국생활의 성패를 가름지을 수 있는 커다란 문제로 떠오른다.

언어충돌이라는 문제는 속성상 개인이 온전히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각개 격파해서 성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혼돈을 국복하기 위한 본격적인 방안들은 언어학 전공자들에게 숙제로 남겨놓자.

여기서는 그 방안중의 하나로서 전적으로 언어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동포신문의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지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사관이 한인들에 대한 공지사항을 알릴 적당한 매체가 없어 스스로 영사회보를 만들어 영사과 사무실에 비치했던 것을 기억하는 교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93년 오니바신문이 간행된지 얼마 뒤부터 영사회보가 사라졌다. 대사관에서 신문사에 팍스 한 장만 보내면 이를 지면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영사회보를 불과 수백장 찍었다면 신문은 그보다 훨씬 많은 부수를 제작해 배포한다. 영사회보를 발행하기 위한 제작비 인건비만큼 대사관은 재정을 절감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액수만큼 오니바가 대사관에 재정지원을 해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오니바신문과 대사관이 재외동포재단의 재정지원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재외동포재단의 오니바에 대한 재정지원이 성사되기 직전에 구안기부 직원들이 이를 틀었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양쪽의 갈등이 한인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동포신문이 불가피하게 개인사업의 형식을 띄고 있더라도 그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여느 개인사업과 비교할 수 없다. 개인사업의 성격과 공기(公器)의 성격을 절반씩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그 절반의 부분만큼은 한인사회와 대사관에서도 신문 운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오니바신문의 월간 총매출액은 대사관 직원 한사람이 쓰는 비용의 절반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니바신문의 역할이 대사관 직원 한사람 활동량의 절반에도 못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의 시대라고 일컫는 지금, 문화의 핵심인 언어가 충돌하는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오니바신문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이다. 시장이 너무 좁다는 것이 신문의 자립을 어렵게 하고 월간신문이라는 기형적인 상태를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원인이다. 그렇다면 재불한인들이 후원회를 조직해서 오니바를 한인들의 공공의 마당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김필·문화평론가)
2005-08-01 08: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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