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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통일 전략과 통일운동
icon marisan
icon 2011-08-08 19: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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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을 통한
올바른 통일전략과 통일운동

임진왜란 때 중국(明)은 抗倭援朝戰爭, 북한의 6.25남침전쟁
때는 抗美援朝戰爭이란 명분으로 KOREA(조선)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하였다. 明(중국)나라는 임진왜란으로부터 358년
만에, 淸(중국)은 淸-日전쟁 패배로부터 55년만에 터진 6.25
남침전쟁에 조선(북한)을 돕겠다는 명분(援朝)을 내걸고,
일본이 아닌 미국을 적국으로 삼아 참전하였다.

1950년 6.25남침전쟁이 터져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된지 올해로 61년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 세계사적 비극인 6.25남침전쟁의 성격이 무엇인지 조차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가 환자의 병명을 정확히 알아야 그 병을 고칠 수 있드시, 이 반문명적 패륜 전쟁의 성격을 정확히 알아야 통일을 이룩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밤이 새도록 울고있는 사람에게 “누가 죽었는데 그렇게 슬피 우는가?” 물으니 “글쎄 나도 누가 돌아가셨는지 잘 모르겠다” 라고 했다는 우화처럼, 6.25남침전쟁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6.25남침전쟁을 일컬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쏘 양강체제의 대결과 쏘련의 세계공산화 전략에 따른 김일성의 남침 적화야욕, 그리고 이에 中共이 동조(同調) 참전한 이념전쟁” 쯤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는 지극히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이 전쟁에 중공(淸)이 참전하게 된 진짜 속셈은 위와같은 이해(理解)는 물론이고, 중공 수뇌부는 “조선에 대한 지배권 복구” 의도를 깊숙히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나당 연합은 AD 660년과, 668년에 백제와 고구려를 연달아 멸망시켰고, 중국(唐, 元, 明, 淸)은 조선(KOREA)을 무려 수백년 동안에 걸쳐 번속국(藩屬國)처럼 여겨,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해 오다가 淸-日전쟁에 패배하여(1894~95) 그 지배권을 작은 섬나라 일본에 빼앗기게 되었다.
이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淸나라(中共)는 치욕을 씹으며 절치부심하고 있던 참에 김일성의 남침전쟁 참전 제안을 받게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수락하고, 드디어 1950년 6월 25일 실질적 남침이 시작되자 이를 청-일전쟁 패전 이전의 상태로, 즉 “조선(KOREA)에 대한 지배권 복구”의 호기(好期)로 판단하여 대거 참전하게 되었다.
이것이 6.25남침전쟁의 핵심 성격이다.

이를 증명하고도 남을만한 현상들이 이미 만천하에 들어났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無知한 인식의 바탕에서 겉껍데기만 보고 남-북화해 교류니, 통일이니 하고 헛수고만을 되풀이 해 왔다. 중국의 東進策略 구도에 얽매여 있는 북한과의 통일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핵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진왜란(1592~98)이 터지자 明은 조선에 지원군을 파병하였는데 그 명분이 항왜원조전쟁(抗倭援朝戰爭) 이었고, 이로부터 358년 만에 벌어진 6.25남침전쟁에 中共이 참전한 명분은 아이러니칼 하게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이었다. 중공(明-淸)은 임진왜란 때부터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KOREA(조선)를 원조하겠다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明-中共)의 “援朝”란 대체 무엇을 말함일까?

2009년 11월 22일 북한을 방문한 중국의 梁光烈 국방부장관은 북한의 인민무력부가 주최한 연회석상에서 “나는 지금 50여년전 중국의 인민지원군 전사로 조선에 와 있으며, 피로 맺어진 중국과 조선(북한)의 친선관계를 직접 체험했다”고 말했다.
이에 북한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도 “역사의 풍파를 이겨낸 朝-中 친선을 변함없이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확고부동한 입장” 이라고 화답했다.
중국이 2002년 6월부터 시작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물론이고, 우리 정서에 남다른 애환이 서려있는 한민족 고유의 민요 아리랑까지도 자기네 국가 문화유산이라 주장하여 무형문화재로 등재하는 등 노골적인 東進策略의 속셈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2011년 6월 23일 언론보도).
위와 같은 사실들은 中共의 6.25남침전쟁 참전이 “KOREA(조선)에 대한 지배권 복구 전쟁” 임을 확실히 방증(傍證)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KOREA(조선)에 대한 지배권 복구”는 그들 역사에 고금을 관통하는 東進策略(정책)의 결정판이고, 이를 더 장기적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이른바 東北工程이 노리는 목표중 하나다. 중국이 지금처럼 북한의 배후를 떠받혀주지 않는다면 그 권력이 단 1개월인들 유지될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중국의 동진책략과 흡북음모(吸北陰謀)를 저지할 나라는 이 지구상에러시아 뿐이 없다. 1990년, 단절되었던 한-러 국교가 회복되고, 이런 변화의 영향으로 북한-러시아間 유사시 군사자동개입 조항이 폐기된 “조-러우호선린협조조약”이 새로 체결되므로 극동에 새로운 국면이 도래해 있다. 우리는 북한과 러시아 연해주가 맞닿아 있는 접경지역 두만강 하구 17㎞를 주목해야 한다.
통일의 당위성만 강조하고 통일전략이 없다면 통일은 요원하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한 선제적(先制的) 통일전략을 세워 나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사실과 우리의 지정학적 입지를 깨닫고 움직여야 올바른 통일전략이 나오고, 올바른 통일운동이 될 수 있으며, 한민족의 悲願인 統一聖業을 이룩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9년전인 1583년, 이율곡 선생이 10만양병설을 주장했던 해로부터 428년이 되는 요즈음, 필자는 그 선각자의 심정을 헤아리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2011년 7월 1일.

통일방해흡북음모외세저지
統一妨害吸北陰謀外勢沮止 국민대책회 대표 마리산
E-mail : glpican3@naver.com ◇ achimvoc3@hanmail.net
2011-08-08 19: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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